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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Oct 06. 2020

게스트하우스의 진상 손님들

시골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삶은 제법 낭만이 있다. 사람과의 따뜻한 만남이 있고 비수기 한적할 땐 갓 내린 커피 향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 그 자체다. 하지만, 서울이나 지방이나 한국이나 외국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기 마련이고 진상 손님 또한 어딜 가나 존재하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이다. 마치 어느 직장을 가던 이상한 사람 하나씩은 꼭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진상 보존의 법칙은 우리 역시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는데 너무 만족스럽던 동해살이에 꼭 한 번씩 진상 손님이 와서 행복한 삶을 다 뒤집어놓고 가곤 했다. 또 그 아픔이 잊힐 때쯤 되면 새로운 진상 손님이 찾아오는 반복의 순환고리였는데 이는 아무래도 모든 서비스 자영업자의 숙명인 것 같다. 가게가 조금씩 알려지고 손님이 많아질수록 그 주기는 점점 짧아졌는데 그나마 다른 곳들에 비하면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한 번씩 흩어진 멘탈을 부여잡곤 했다.


진상 손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카페보다는 게스트하우스의 경우가 많았다. 좋은 손님에 대한 기억 역시 게스트하우스가 더 많았는데 아무래도 주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더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카페 같은 경우는 비교적 짧은 시간만 머무르다 보니 그때그때 스트레스받는 상황은 있어도 며칠씩 끙끙 앓거나 지금까지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는 경우는 딱히 없었다. 돈 버는 건 원래 쉽지 않은 법이니 이 정도 스트레스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연습을 많이 하긴 했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진상 손님과 보내는 하루 이틀의 시간은 그야말로 괴로움 자체다.


아무래도 호스트와 게스트 간의 상호작용이 기대되는 곳이라 더욱 그런 것 같은데 손님들이 주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만큼 감정 소모도 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가끔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번 챕터에선 그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까 한다. 친구들 모두 좋은 손님 이야기 보단 진상 손님 이야기 듣는 걸 더 좋아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혹시 그러려나 모르겠다.




8월의 어느 여름날, 저녁 8시가 넘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당일 예약문의 전화였는데 성수기인지라 객실은 이미 마감되어 안타깝지만 잔여 객실이 없음을 알려드렸다. 성수기엔 예약 문의가 워낙 많이 오는 편이라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카페 마감과 예약된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을 체크인해드리고 집에서 잠시 쉬고 있던 때였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너무 피곤해 공용공간 소등 시간인 11시 전까지는 집에서 조금 쉬려던 참이었다. 공용공간엔 CCTV가 설치돼 있었고 가게와 집이 가까웠기에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CCTV를 틀었는데 웬 처음 보는 중년의 남녀 커플이 카페에서 하얀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거였다. 처음엔 예약 손님일까? 했었지만 손님들 얼굴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터라 자세히 살펴보니 처음 보는 분들이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CCTV를 돌려보니 방금 전 전화하신 분들이 아닌가! 알고 보니 지나가다 공용공간을 보고 예약문의를 주신 거였는데 통화를 끊고 밖으로 나가셨다가 정확히 5분 뒤에 까만 비닐봉지 몇 다발과 함께 다시 카페로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참고로 카페 공간은 저녁 6시 이후에는 게스트하우스 공용공간으로 그날의 숙박객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입고 있던 남방까지 벗고 하얀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건어물과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황당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다른 손님이 불쾌감을 느낄까 봐 바로 옷을 챙겨 입고 부랴부랴 가게로 뛰어갔다. 가면서도 화가 나기보단 황당한 마음이 더 컸는데 도착해보니 여전히 제 집처럼 편하게 술을 먹고 계셨다. 다가가서 지금은 카페 영업시간이 종료되어 숙박 손님들께만 공간을 개방하니 자리를 비워 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렸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아, 이거 마시던 것만 마저 마시고요 ^^ 지나가다 너무 좋아서 잠깐 술 한잔 하고 싶어서요”였다. 아주머니께서도 옆에서 맞장구를 치셨는데 내 기준으론 상식 밖의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라 자칫하면 언성이 높아질 것 같았다. 더 이야기해봐야 말이 통할 것 같지도 않고 괜히 나만 손해일 것 같아 언제 나가시나 눈에 불을 켜고 카운터에 앉아 계속 째려보고 있었다. 그 뒤로도 한 10분 넘게 신나게 술을 드시고 떠들다 나가셨는데 그나마 그 시간에 다른 손님들이 공간에 없었기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지 안 그랬으면 분명 큰 소리가 오갔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뭐가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지나가다 가게가 예쁘면 잠깐 들어가서 백색의 러닝셔츠와 함께 술을 마셔도 되는 건가?? 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세상은 참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번엔 수건 에피소드다. 날씨 좋은 평온한 가을 아침 묵호등대에 주차 후 차에서 내리는 데 아내가 건너편 차 보닛 위에 익숙한 색깔의 수건이 보인다는 거였다.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했지만 나는 설마 우리 수건이겠냐며 누가 저기에 수건을 갖다 두냐며 그냥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우리 수건이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아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까이 가봤다. 맙소사! 아내 말이 맞았다. 정말로 가게에서 손님들께 무료로 제공하는 수건이었다. 수건 2장이 수줍게 올려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날 비가 왔던 터라 더러워진 차를 가게 수건으로 닦고 보닛 위에 그냥 버려두고 온 것이다.


이것은 현실인가 꿈인가?

마침 자동차에 휴대폰 번호가 있어 조회해보니 이틀간 머무르고 있는 20대 남자 손님이었다. 굉장히 예의 바르고 착한 분이었는데 도무지 믿기지 않아 일부러 수건을 잘 보이게 들고 가게로 들고 왔다. 마침 기가 막히게도 카페 공간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다. 아내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고 손님 시야에 수건이 보이도록 들고 들어왔는데 수건을 보고도 아무 반응 없이 열심히 만화책을 보며 킥킥거리시는 게 아닌가! 남은 속이 타들어가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 건지! 혹시 수건을 밖에서 사용하신 적이 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끝없이 고민하다 이건 사람이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역시 말해봐야 싸움만 나고 인터넷에 후기 테러를 당할까 두려워 그냥 참자며 아내를 달랬다.


다시 빨아서 손님께 제공하기 힘들어진 수건은 곧 겨울도 오는데 동파나 막자며 수도관에 분노를 담아 꼭꼭 묶어버렸다. 덕분에 겨울에 수도관은 한 번도 터진 적이 없었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그 게스트분은 퇴실할 때도 입실할 때와 마찬가지로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며 “안녕히 계세요. 너무 잘 쉬다 갑니다.”라며 씩씩하게 인사 후 떠나가셨다. (리뷰도 별 5개 만점을 주셨다 ^^;;) 지금 생각해도 무슨 경우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세상은 넓고 이번엔 좀 다른 의미로 별별 사람이 다 있다고 하고 넘기는 수밖에.




가끔 술에 취해 무언가를 가져가는 분도 있었는데, 근처에 한 민박집은 벽에 달린 선풍기까지 뜯어간다고 하던데 우린 다행히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어느 날 저녁 카운터에 앉아 있는데 남자 손님 한 분이 냉장고를 열고 무언가를 주머니에 넣어 방으로 들어가셨다. 당시 카페 영업용 냉장고의 일부를 게스트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 드렸는데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수는 칸을 구분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마침 아내가 그 장면을 봤는데 아무리 봐도 카페에서 판매하는 사과 주스를 가져가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도 어떻게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잘못 본 거 아니냐며 (심지어 우리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넘어가려다 아내가 확실하게 봤다고 느낌이 이상하다고 해서 결국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각도가 애매해서 정확히 확인이 불가했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니겠지 하며 퇴근길에 올랐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어떤 남자분이 갑자기 현금을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장님, 제가 어제 술에 취해 카페 냉장고에 있던 주스를 꺼내 마신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제 침대에 주스 병이 있더라고요. 카페 가격으로 계산하고 싶은데 혹시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이번에도 아내가 맞았다. 그래도 양심적으로 말씀해주신 걸 보니 어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단순히 술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 같았다. 술 관련 에피소드만 나열해도 한 챕터는 나올 텐데 술에 취해 변기를 부신 분도 있고, 라면 봉지 쓰레기와 스프를 가게 전용 수납장 구석에 버려둔다거나, 여자 손님에게 은근히 치근덕대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하.. 술은 미워하되 사람까진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오는데 아래와 같은 경우는 그래도 일상적이고 무난한 정도에 속한다.


- 예약 날 입실 시간이 한참 지나 오늘 못 가니 전액 환불해 달라고 떼쓰는 손님

- 예약 인원을 속이고 뒤늦게 추가 인원을 데려오는 손님

- 취소, 환불 규정에 상관없이 무조건 전액 환불해 달라는 손님 (장사 하루 이틀 할 거냐는 말과 함께..)

- 잠깐 샤워만 하고 가겠다는 행인

- 체크아웃 시간이 몇 시간 지나도 기별 없이 퇴실 안 하는 손님

- 입실부터 퇴실까지 계속 주인장 또는 다른 손님에게 식사나 술을 같이 하자고 보채는 손님

- 지나가다 그냥 들어와서 신발 신고 방 구경하다 화장실만 쓰고 나가는 손님

- 마을 어귀 어디에서 누군가 앉아서 술 마신다고 나보고 내쫓으라고 소리치는 아저씨

- 아메리카노 몇 잔을 시켜 사이좋게 종이컵에 나눠 드시는 수십 명의 단체 손님

- 갑자기 들어와 이 집은 얼마 주고 샀는지 리모델링비는 얼만지 월세인지 자가인지를 묻는 손님


안 치우고 주무시는 손님 정도야 무난하다. 숙박업은 보살이 돼야 즐겁게 운영할 수 있다.


아무래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늘 문이 열려있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의 특성상 이런 부분은 서비스 업종으로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시작 전부터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 같다. 아마 서비스업을 하는 사장님들이라면 매일 겪는 일상일 텐데 그나마 술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이 정도 선에서 끝났던 것 같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분께는 정중히 거절하면 되고, 너무 힘들게 하는 손님도 하룻밤 자고 나면 집에 가기 마련이니 매일 내 옆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이상한 직장 동료나 상사보단 나으려나 모르겠다.


시골에도 진상은 찾아오고 생업의 치열함도 마찬가지지만, 언제든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건 이런 진상 손님보다 훨씬 더 매너 좋은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좋은 손님 99명보다 진상 손님 1명이 힘을 더 빼놓긴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더군다나 성수기와 비수기가 나뉜 덕분에 도시보단 충분히 쉬어가며 일할 수 있고 영업시간도 서울에 비해선 훨씬 짧다. 출퇴근길은 답답한 콩나물 지하철이 아닌 4계절의 형형색색 풍경을 볼 수 있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이런 시골만의 매력이 있기에 가끔 진상 손님이 찾아와도 으쌰 으쌰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강원도 시골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다가도 평화로운 풍경에 금방 또 마음이 사르륵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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