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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Nov 01. 2020

손님의 자작곡. 강원도 묵호

사업을 시작하고 2~3년 차가 되면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는데 이 맘 때 즈음 반복되는 일상이 조금 답답하게도 느껴진 것 같다. 그래도 처음 해본 개인사업이었지만 나름 적성에 맞는다는 걸 느꼈고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자유로움과 성취감도 있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억에 남는 손님 두 분이 찾아왔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의 퇴실시간은 오전 11시이다. 한가한 비수기 평일이라 청소도 금방 끝나고 오늘은 또 무슨 맛있는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며 가게를 나가는데 조금 전 퇴실한 남자 손님 두 분이 아래 공원에 있는 거였다. 청소 중에 무슨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는 했는데 알고 보니 퇴실하신 두 분이 열심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계시는 거였다. 종종 혼자서 기타 들고 오시는 손님들도 있는 편이고 나 역시 20대 중반에 어딜 가던 기타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 있어 옛날 생각도 하며 노래를 듣다 언덕 위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음 체크인 시간인 4시까지는 여유가 있던 관계로 맛있게 식사를 하고 바닷가 앞 카페에서 한적하게 시간도 보내고 왔다. 가게에 도착하니 3:30분 정도였는데 11시에 퇴실하신 두 손님이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계시는 거였다. 보통 남자 둘이 여행 오면 진탕 술을 마시거나 이리저리 드라이브를 다니기 마련인데 5시간 가까이 한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분들이 신기해 한번 내려가 보기로 했다. 커피를 두 잔 전해드리며 식사는 했냐고 물어보니 점심도 거르고 오전부터 계속 여기에 있단다.


혹시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물어보니 그냥 기타를 좋아하는 대학생인데, 이 곳 공원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 좋고 예뻐서 마을을 주제로 한 자작곡을 어제저녁부터 만들고 있다고 한다. 가사를 쓰고, 코드를 짜고 이제 거의 완성 단계라 조금만 더 하면 끝이라 곧 다음 여행지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혹시 실례가 안되면 노래를 들어볼 수 있을지 물어보니 흔쾌히 기타를 잡기 시작했는데, 노래를 듣고 나니 평범한 대학생들이 지은 노래라기에는 마을과 너무 어울리는 서정적인 분위기에 흠뻑 빠져버렸다.


기타 하나 매고 돌아다니던 나의 20대가 떠올라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가게로 뛰어 올라가 기타를 들고 내려왔다. 다행히 같이 연주해도 좋다고 하여 그들의 연주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도 묵호를 떠올리면 이 노래가 마을의 주제곡처럼 떠오르곤 하는데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것 같다.




노래 제목: 묵호 (파랑~노랑~주황 지붕이 보여요~♬)

묵호 자작곡 Full Vsersion
노래의 배경이 된 강원도 작은 마을 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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