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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Sep 27. 2020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하루 일과

강원도에 온 지도 1년 정도 지나자 생활은 점점 편안해졌고 매일 보는 바다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유 시간도 많아 서울에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우리의 하루 일과는 나름의 루틴이 있었다.


우선, 7시 30분 정도 일어나 씻고 8시 20분 즈음 설렁설렁 출근한다. 가게 근처에 집을 얻은 관계로 차로는 2분, 걸어선 1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서울에서라면 복잡한 지하철 인파를 뚫고 이미 회사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아침 시간이 확실히 여유로워졌다. 이건 시골 생활의 장점이라기보다는 내 생활리듬에 알맞은 시간 세팅을 할 수 있는 자영업자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서울과 비교해서 좋았던 점은 바로 출퇴근 시간의 획기적인 단축과 여유 있는 출근길이었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 가게까지 가는 길은 지대가 높은 곳이라 오갈 때마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런 일상의 소소한 변화를 전에는 미처 못 느끼고 살았던 것 같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빵을 굽기 시작한다

8시 30분이면 가게에 도착했는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오븐을 예열시키는 일이다. 예열이 끝나는 대로 빵을 넣고 굽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게 안은 고소한 빵 냄새로 가득 찬다. 9시 조식 시간이 되어 손님들이 하나둘씩 나오면 준비한 조식을 제공하고 커피를 내어 드린다. 하루의 시작을 갓 구운 빵 냄새와 향긋한 커피로 시작하는데 은은한 재즈 음악이 그 공간을 더해준다. 조식 시간이 1시간이어서 금방 준비가 끝나곤 했는데 그러면 우리도 테이블 한쪽에 자리 잡아 빵과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곤 했다.


체크아웃 시간 전까지는(11시) 손님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때도 있고 기타를 치기도 하는 등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업체와의 컨퍼런스콜에 수십 통 넘게 쌓여있던 이메일과 긴급한 오더 처리에 정신없던걸 생각하니 진짜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11시 퇴실 시간이 되면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객실 청소를 시작한다. 비수기 평일엔 금방 청소가 끝났던 터라 1시간 정도면 충분했는데(물론, 성수기와 주말엔 너무 바빠 적어도 3시까지는 쉬지 않고 청소를 해야 한다) 청소가 끝난 후 다음 체크인 시간(4시) 까지는 또 한 번의 자유시간이 찾아온다. 이때 동해 시내나 강릉, 삼척 같은 곳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도 하고 조용히 유유자적하고 싶은 날엔 근처 바닷가를 걷거나 좋아하는 카페들에 가곤 했다. 반복되는 육체노동으로 피곤한 날엔 집에서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하고 그날의 상황에 따라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곤 했다.


청소가 힘든 날엔 지붕 위로 보이는 풍경과 시간적인 여유로움에 감사하며 힘을 내곤 한다

오후 4시부터는 체크인이 시작되는데 미리 가게에 나와 그날의 체크인 손님을 기다리곤 한다. 보통 6시까지는 가게에서 체크인을 해드리고 6시 이후로 늦게 도착하는 게스트분껜 문자나 유선으로 안내해드려 혼자서도 체크인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는데 비수기엔 손님이 많지 않아 대부분 일찍 입실하시곤 했다. 퇴근 후 저녁 시간엔 주변의 가게가 대부분 닫는 관계로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근처의 지인들과 만나곤 하는데 마지막으로 밤 11시 소등 시간엔 꼭 가게로 다시 돌아가 최종 점검을 하곤 했다. 가끔씩 늦게까지 떠들거나 술을 드시는 손님들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피해받지 않도록 정리하는 차원의 점검이었다.


사실 아침 조식 시간과 청소를 제외하면 별다르게 바쁜 게 없는 일상인데 이런 여유로운 비수기가 일 년 중 대부분이고 성수기와 주말엔 카페도 운영하는 관계로 6시 퇴근 까지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계속 바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비록 바쁘긴 하지만 중간중간 남는 시간이 많아 서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던 책을 원 없이 읽거나 미뤄뒀던 드라마, 영화를 보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늘 바쁘게만 지냈던 현대인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우리도 처음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 경우가 많았는데 한동안은 시간관리를 잘 못해 전보다 더 게을러지기도 했다.


도시에선 내가 스스로 즐거움을 찾지 않아도 잘 만들어진 곳을 찾아 소비하기만 하면 됐는데 이곳에서는 무언가 즐길 거리나 배울 거리를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이때가 나에 대해 많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지금 뭐가 하고 싶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것들에 도전해 봤다. 물론 일이나 돈벌이까지 연결되지는 못하고 취미 정도에서 끝난 것들이 많지만 이를 통해 전보다는 나란 사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서울과 지방의 대표적인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다양한 맛집과 편리한 배달음식 서비스인데 어느 날 멕시코 요리가 먹고 싶어 지도를 찾아보니 타코 가게는 대부분 서울에만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타코 먹으러 서울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들어 먹자니 엄두도 안나 아쉬워하며 다른 대안을 찾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계속해서 비슷한 일이 생기자 나중엔 유튜브를 보고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둘 다 자연스럽게 요리가 많이 늘었는데 이제는 레시피를 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요리가 가능하고 먹어보면 어떤 양념이나 재료를 추가해야 맛이 살아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런 불편함과 결핍이 오히려 뜻밖의 재능과 즐거움을 선물한 것이다. 나중엔 밤늦게 치킨 배달해주는 곳이 없어 집에서 치킨까지 튀겨 먹곤 했는데 그래도 시내에 나가면 대형마트와 영화관, 기본적인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은 모두 있었던 관계로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하는 아쉬운 부분은 한 번씩 서울에 다녀오며 풀곤 했다.


지방의 작은 도시로 갈수록 문화나 취미 관련 무언가를 배울만한 곳이 부족한 편인데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독학으로 습득해야만 한다. 시간이 많아 무언가를 배울만한 여유는 생기지만 다양성은 부족한 편이고 주로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자연환경과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면 더욱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내 같은 경우에는 온라인에서 독학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게 아무래도 영 익숙지 않다고 했는데 동해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는 오히려 학원 같은 곳에서 남에게 배우는 게 낯설다고 하니 역시 그동안 살아온 환경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소비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생산하고 만들어 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게 됐다. 가끔씩 좋아하던 재즈바와 대규모 와인 장터가 열리는 서울이 그립긴 하지만 훨씬 더 낮은 주거비용과 여유 있는 도시의 속도가 참 마음에 든다. 혹시 지금 누군가 소도시의 삶을 꿈꾸고 있다면 주어진 시간을 더욱 알차게 채워줄 수 있는 생산적인 취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넷플릭스는 생각보다 금방 보더라! 만들어진 콘텐츠를 소비할 뿐 아니라 생산까지 한다면 삶은 훨씬 더 풍성해질 것이다)


비 오는 조용한 날엔 잔잔한 영화를 틀고 함께 빵을 만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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