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크어버드 Nov 03. 2020

동해안 3월의 폭설

"어어~~~~~어떡하지 어떡하지?????"


가파른 언덕 위에서 바퀴만 하염없이 헛돌고 있다. 이렇게 눈 오는 동네인 줄 알았다면 4륜으로 차를 살걸 그랬다. 서울 못지않은 제설 속도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그건 딱 큰 도로까지였다. 집 앞까지 이어지는 언덕길은 이미 빙판길로 변해버려 제설차량조차 올라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헛돌고 있는 자동차가 우리만은 아니다. 그나마 위로가 된다.


묵호등대로 올라가기 위해선 기나긴 언덕을 지나야 하는데 비교적 완만한 언덕을 절반 정도 지나면 가파른 언덕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 고지가 눈 앞인데 가파른 언덕의 70% 지점에서 더 이상 차가 올라가질 않는다. 모든 차가 뱅뱅 돌다 간신히 유턴하여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브레이크를 밟으니 차가 도는 게 자칫하면 모든 차가 엉켜 붙어 접촉사고가 발생할 위기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실은 한 군데가 더 있다. 차량 통행이 적은 곳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보았지만 이 곳은 더 악조건이었다. 조금 올라가다 이내 포기하고 차를 돌리는데 이대로 미끄러져 바다 바로 앞 가드레일을 들이받을까 조마조마하며 간신히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결국 바닷가 앞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 있는 모든 담요를 꺼내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집까지 가기 위해선 거대한 언덕 하나를 넘어야만 한다.

이 정도 눈이면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냥 하염없이 걷는다.


영동지방은 겨울철에 종종 폭설이 내리곤 하지만 이렇게 직접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강원도는 무조건 추울 거란 나의 상식을 뒤엎고 겨울 내내 너무 따뜻한 날씨를 보여준 동해시였기에 우리의 동해 예찬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그래도 지리적인 특성상 눈은 많이 온다고 하는데 그해 겨울은 눈 조차 오지 않다가 어찌 된 게 3월에 이렇게 폭설이 내리다니! 동네분들 말로는 매년 3월에 꼭 한 번씩 이렇게 폭설이 오곤 한단다. 이게 지구 온난화 때문에 더 심해지는 건지 원래부터 이랬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우린 아직 젊고 감성이 충만하다고 느낀 게 올라가는 내내 이런 에피소드 가득한 일상이 너무 재밌게만 느껴졌다. 이 추억을 잊고 싶지 않아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으며 올라가니 20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겠다. 이 순간에도 아! 이건 서울에서 그냥 회사 다녔으면 절대 못했을 경험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긍정적이었나 싶은 순간이다.


그렇게 20분여간의 언덕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오니 기분도 상쾌해지고 너무 즐거운 게 이제는 정말 시골을 즐길 줄 알게 됐나 보다. 다음날 가게로 나가보니 온 마을이 하얗게 변해있는 게 마치 동화 속에 있는 느낌이다. 열심히 마당을 쓸고 집 앞 빙판길에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지만 이 모든 노동을 보답할 만큼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눈보라를 뚫고 손님들이 올까 싶기는 하지만 이 풍경만으로도 부자가 된 느낌이니 오늘 하루 영업은 성공적!

하얗게 덮힌 3월의 묵호



이전 06화 바닷가 생활의 낭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