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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크어버드 Sep 24. 2020

바닷가 생활의 낭만

돗자리 하나만 있으면 돼

바닷가 소도시는 비록 백화점과 쇼핑몰은 없어도 돗자리 하나만 펴면 그 어떤 곳도 부럽지 않은 곳이다. 조금 식은 치킨 한 마리에 맥주 한 캔만 있어도 좋아하는 음악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진다면 5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을 때가 많다. 바닷가에서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너무 좋아서일까?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살았는데도 복잡한 서울의 약속은 지금까지도 적응이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7시 강남역, 6시 홍대 6번 출구처럼 도시 라이프를 상징했던 나의 약속 장소는 대진 해수욕장, 삼척 해변으로 바뀌었었고 주변에 친해진 지인들과 서로의 가게 또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고 초대받는 일은 종종 있는 경우지만 서로의 취향이 반영된 주택이나 가게에서 만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모두 한자리에 모이면 맛있는 음식에 좋아하는 술을 곁들이다 함께 바닷가에 산책하러 나가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놀고 어른들은 돗자리나 텐트 안에서 음악을 틀고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한다. 술이 오르면 기타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를 때도 있고 상시 차에 구비되어 있던 블루투스 마이크를 켜기도 하는데 도시의 아파트 주변에서 그랬다간 난리가 날 터이다. 이는 성수기를 제외하곤 한가한 해수욕장이 가까이 있고 대부분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 단독주택에 살았기에 모두 가능한 일이었다.


약속 장소 '대진해수욕장 7시'의 현장

이곳에 와서 그동안 인연이 없던 캠핑에도 도전해보게 됐는데 사실 캠핑이라기보다는 집에 있는 살림을 캠핑 박스에 담아 그냥 바닷가로 나갔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 같다. 고가의 장비도 필요 없이 버너 하나면 충분했는데 캠핑에 자주 쓰이는 물건은 아예 트렁크에 상시 구비해두고 다녔다. 달리다 좋은 곳이 있으면 그냥 차를 세우고 돗자리를 펴면 그게 바로 캠핑이 됐다. 언제 바닷물에 발 담글지 몰라 수건도 항시 구비해뒀는데 이런 게 바로 바닷가 생활의 낭만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꿈꿨던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그곳에 마음 맞는 가까운 가족이 3~4가구 정도 자주 교류하며 사는 모습이었다. 동해시 생활 중 가장 아쉬웠던 부분도 이런 마음 맞는 젊은 사람끼리의 네트워크 부재였는데, 아예 없었던 게 아니라 가까이 지내던 부부가 도시로 먼저 돌아가게 되며 온 허전함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잠시 서울에 머무르고 있지만 다시 강원도로 돌아가게 된다면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마음 맞는 비슷한 또래의 이웃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부러워하던 친구들에게 소도시 생활을 적극 권유해도 (서울의 높은 주거비용과 직장 스트레스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고, 초기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일자리까지 제공해 준다고 했다) 막상 아무도 편리한 서울을 떠나고 싶어 하진 않던 걸 보니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 사람들에게 서울을 떠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바닷가 라이프에선  돗자리를 펴는 순간 그 어떤 메뉴도 근사한 식사가 된다.

동해시 자체는 인구 9만의 도시라 시골보다는 소도시 생활에 가깝다. 시내로 나가면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고 중심 상권도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던 곳은 시내에서 차로 10~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고 젊은 사람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옛날 모습의 구도심이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다. 시골 감성에 생활의 편리함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우리에게 차로 10~15분 거리는 늘 가까운 거리라고만 생각했는데(심지어 도로에 차도 별로 없고 주차도 아무렇게나 하면 그만이다) 평생을 이 곳에서만 살아오신 분들은 동해시내에서 이곳 묵호까지 너무 멀어 잘 안 나온다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여긴 너무 멀어 주말이나 손님 올 때가 아니면 못 오겠다고 하신 분이 꽤 많았으니 말이다.


차로 30~40분 거리인 삼척도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라고 생각했는데 동네 분들 기준으론 완전히 다른 도시이자 생활권도 분리된 곳이라는 점은 평생을 수도권에서만 살아온 우리에겐 꽤나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래서 동해에서 잘 되는 가게가 삼척점을 내면 그곳도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는데 두 도시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서울 구 하나의 절반도 안 되니 내 눈에는 마냥 신기한 소도시의 풍경이다.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면 대도시와는 또 다른 삶의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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