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크어버드 Feb 16. 2021

연고 없는 지방에서 살면 외롭지 않나요?

설 명절도 지나가고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 지인들에게 강원도 리턴 계획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전에 한번 사고(?)를 쳐서 그런지 반응이 확실히 전과는 다르다. 직장생활에 지쳐있는 친구들은 참 자유롭게 산다며 이번에도 때려치울 수 있는 용기를 부러워하고 부모님은 이제는 걱정보다는 이런 내 성격을 신기해하시는 편이다.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하고선 모두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바다가 그렇게 좋으냐?"부터 "아무 연고 없는 동네에서 사는 게 외롭지 않냐?" 등의 질문이 걱정보다는 정말 신기함에서 나오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참 아이러니한 게 강원도에 있던 지난 2년 동안 오히려 서울에서보다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났다. 가까이 살지 않으면 서울이 워낙 크다 보니 자주 보기 쉽지 않은 데다 결혼 후에는 더더욱 각자 생활에 치여 1년에 한두 번 밖에 못 보고 살았던 거 같다. 특히 입사 초반에 인천공항에서 스케줄 근무를 할 때는 인간관계가 어쩔 수 없이 많이 끊어졌는데 막상 강원도에 오니 이때 인연들이 소식을 듣고 수시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막상 서울에 있으면 따로 만나지 않았을 친구나 선후배들도 소식을 듣고 1박을 하러 오거나 카페로 찾아오곤 했다. 의외로 동해안에 부모님이 계시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그런 친구들은 고향집에 올 때마다 우리가 운영하던 카페에 들르곤 했다.


서울에 돌아온 뒤, 코로나 여파로 모임 자체가 많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전처럼 홍대, 강남의 북적거리는 분위기보다는 조용하고 사람 없는 곳에 익숙해지다 보니 약속이 생겨도 안 나가기 십상이었다. 친구들은 보고 싶지만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대중교통과 사람에 치이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같은 친구를 만나도 환경이 달라지니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었는데 서울에선 주로 "술"로 귀결되는 만남이었지만 강원도에선 바닷가 앞에 돗자리를 펴는 날이 많았다. 물론 여기서도 술이 빠질 수는 없지만 파도소리와 짠내가 나고 별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은 그 맛이 또 다르다. 2차는 손님이 떠난 가게로 향해 블루투스 마이크를 켜고 기타와 피아노를 치며 우리밖에 없는 주택에서 맘껏 고성방가를 즐기곤 했다.



5월부터 7월 성수기 전까지는 친구가 바닷가 구석 한편에 텐트를 계속 쳐놨었는데 짬이 나면 수시로 가서 책도 읽고 도시락을 싸가 점심을 먹곤 했다. 가끔 날이 좋은 날엔 그대로 바다에 들어가기도 하고 말이다. 이 생활을 2년 넘게 하다 보니 친구들이 찾아오면 같은 감정을 공유해주고 싶어 바닷가에서 별과 파도와 함께 고기를 구워주곤 했었다. 강릉은 이보다 번화하고 관광객도 많은 곳이라 취사가 어려울 것 같지만 잘 찾아보면 또 보석 같은 곳들이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우리의 아지트 동해시가 있으니 걱정은 없다.


강원도에서 생긴 인연들이 많아 이제는 연고 없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힘들다. 실제로 가깝게 지내던 형님네 부부는 (카페 손님으로 오셨다가 친해진 신기한 인연 중 하나이다) 우리가 온다고 하니 삼척에서 강릉으로 아예 이사를 올까 며칠 전 강릉에 아파트를 보고 가셨다고 한다. 서울에선 수많은 사람에 치여 그냥 스쳐 지나갔을 인연인데 나보다 15살이나 많은 의사 선생님과도 이곳에선 마음만 맞으면 친구가 된다.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이라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대중 속에서 더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고 말이다.


원하는 땅을 바로 구하기는 힘들 것 같아 우선 아파트에 들어갈까 하는데 구정 이후로 조금씩 매물이 나오고 있다. 2월까지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하셔 2월 말이나 3월 초에 강릉에 방문할 것 같다. 강릉에선 동해와 비슷한 생활이 펼쳐질지 아니면 또 다른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외로울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친구들이 회사와 육아에 지쳐 다시 또 찾아오는 삶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아내와 늘 걷던 바닷가를 이제는 아들과 함께 세 가족이 걸으면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얼른 봄이 와서 우리의 삶에도 다시 변화가 찾아왔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