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집이 매물로 나와 삼일절 연휴 직전인 25(목)~26일(금)에 120일 된 아가와 함께 강릉행에 올랐다. 그동안 가까운 동네나 부모님 댁에만 당일로 방문했었는데, 1박에 장거리는 처음이라 아내와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달리 방법이 없어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들이 순한 편이고 카시트에도 잘 적응해서 걱정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갈만했던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이면 가던 곳이 4시간 넘게 걸렸다는 사실.. 아기가 생긴 다는 건 도로 위의 시간까지 바꿔놓는 것 같다.
출발한 지 1시간이나 됐을까? 아직 서울-양양 고속도로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이 불길한 느낌은 뭐지? 아니다 다를까.. 오늘 보기로 한 매물이 막 거래됐다고 한다. 왜 내가 찾는 매물은 늘 도착할 때 즈음 팔렸다고 하는 걸까? 오로지 이 매물 하나만 보고 강릉으로 떠난 터라 참 난감했다. 이미 호텔도 예약해두고 아침 7시부터 2시간에 걸쳐 짐을 싸놨는데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말이다. 별수 없이 오랜만에 바다도 보고 아들에게도 생애 첫 동해바다를 선물한다 생각하고 가속페달을 밟는다.
혹시나 해서 가평 휴게소에서 아파트 근처의 부동산 한 곳에 전화해봤다. 역시나 이곳도 5월까지 입주 가능한 매물은 없고 오늘 볼 수 있는 집도 없다고 한다. 사진이라도 받아볼 수 있을지 여쭤보니 방문을 권하셔서 마침 체크인 시간 전까지 갈 곳도 없고 해서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바꿨다. 전에 계속 연락하던 부동산에서는 여전히 매물이 없고 외근 중이시라 오후 늦게나 사무실에 나오신다고 하시는데 강릉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집을 구하는 거지?
북강릉 IC를 빠져나와 바다가 잘 보이는 사천해변에 잠시 차를 세우고 수유를 했다. 바다 보며 먹는 분유 맛은 어떠니 아들? 앞으로 자주 보여줄게. 30분간 트림도 하고 산책도 하고 다시 차에 올라 송정해변까지 달려가니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부동산에 도착했다. 전에는 눈 뜨고 대충 짐 싸서 출발하면 그만이었는데 아침 7시부터 이 난리를 치고 보니 미안하지만 다음에는 둘이 와야겠다.. 우리 가족 살집은 구해야 하지 않겠니?
부동산에 도착하고 이런저런 상담을 하는데 역시나 전세는 아예 없고 매매도 전세 낀 매물만 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찾는 매물은 아니었지만 8월 만기인 집이 그나마 가장 빠른 입주라고 해서 어떻게 집이라도 볼 수 있을지 사정해서 간신히 집을 보게 됐다. 현재 가장 높은 실거래가 보다도 2천만 원이 비싼 매물인데 15년이 넘어 조금씩 노후화가 시작된 집이었다. 그래도 전체적인 상태는 나쁘지 않았고 바다도 잘 보였다. 아마 4년 전 우리였다면 멋진 조망에 이끌려 바로 계약했을지도 모르겠다. 바닷가 앞에서 한 번 살아보니 조망이 좋으면 좋긴 하지만 어딜 가도 늘 바다를 볼 수 있는 이곳에선 꼭 바다 조망권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걸 몰랐을 테니까. 이 아파트도 그래서인지 외지 사람들이 많이 거래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를 포함한 서울 사람들이 강릉까지 가서 살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조금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일 거다. 그래서인지 바닷가 앞의 집들이 인기가 많은 편인데 우리같이 어린아이를 육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린이집이나 주변 편의시설이 부족한 편이고 (관광시설과 생활권 편의시설은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바닷가 앞에 반찬집이 있지는 않으니까) 무엇보다 같이 놀 또래가 없어서 엄마 아빠가 한 몸을 희생해 아기와 더욱 열심히 놀아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둘 다 일을 해야 하고 아내도 육아만 하기보다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편이라 이제는 전처럼 자유로운 부부가 되기에는 글렀나 보다. 역시 애가 없을 때 돈을 조금 쓰더라도 해보고 싶은 건 다해보는 게 맞는 거 같다.
도착한 날 동해에서 알게 된 지인네 부부가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호텔에 방을 잡았다. 원래는 서울, 분당에 있다 지금은 삼척에 사시는데 육아 선배 입장에서 너무 바닷가 쪽 보다는 시내 쪽을 권하셨다. 전에는 서울에서 강릉까지 가서 사는데 또 답답한 시내에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어린이집부터 배달음식, 병원, 놀이터 친구까지 생각하니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마음 같아서는 전처럼 한적한 바닷가 구옥을 고쳐 개성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가도, 대출이 안 나오는 시골 단독주택과 늘 함께하는 벌레와 지네 그리고 툭하면 수리해야 하는 집까지 현실적인 부분들이 자꾸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시골생활은 오히려 젊고 건강할 때 해야 하나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번 경험했던 생활이라 아쉬움은 덜했는데 이틀간의 고민 끝에 결국 시내 쪽 아파트를 알아보기로 했다. 도저히 우리의 감수성이 채워지지 않으면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바닷가 앞에 꼭 매장 하나를 내자고 약속하며 말이다. 근데 어찌 된 게 시내에도 매물이 없다. 전세는 거의 없고 매매만 조금 있는데 몇 달 사이에 엄청나게 올랐다. 여기서까지 부동산에 시달릴 줄이야.. 그나마 아파트가 덜 오른 편인 게 우리가 알아보던 땅은 두 달 사이에 값이 한참이나 더 올랐다 ^^;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4월에는 진짜 이사 가야 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사업장으로 사용할만한 상가 임대 건물이 많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선 보이지 않던 매물들이 시내에 돌아다녀보니 곳곳에 이렇게 현수막 붙은 곳들이 많다.
사무실 겸 와인 스튜디오로 사용할 곳이라 꼭 1층일 필요가 없어 저렴한 월세로 구할 수 있는 게 아주 큰 장점이다. 평수와 위치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너무 시내만 아니라면 30~40평 기준으로 월세 50~70만 원 정도면 충분한 편이다. 이래야 서울을 떠나는 보람이 있지. 사업은 육아로 인해 빠르게 치고 나가지는 못하고 꾸준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인데 다음엔 강릉에서 콜라블(Collable)이라는 브랜드로 론칭할 와인 사업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