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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경 Mar 17. 2020

미래를 보고, 산다.

buy vs live

애가 크는 것은 옷을 사며 안다. 


아이 물건 살 때 디자인과 가격도 중요하지만 의류 품목에 있어서는 치수도 만만치 않다. 애 옷 치수가 110인지 130인지, 발 사이즈가 190인지 210인지, 양말 사이즈가 7호인지 9호인지.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는, 그래서 많이, 자주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아이 소매가 댕강하진 않은지, 잘 때 내복이 짧아져 배꼽이 보이진 않은지, 운동화 신을 때 힘겹게 낑낑대는지 거뜬하게 신고 나가는지. 육아는, 부모의 눈썰미가 발휘되는 순간을 꾸준히 요구한다. 


일 하는 워킹맘일 때는 특히 그렇다. 인터넷으로 애 내복 고르다 반성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지난겨울에 산 게 130이었나 140이었나 헷갈릴 때. 애 발 사이즈를 묻는 남편에게 자신 있게 “애 사이즈도 몰라? 210이잖아.” 바로 말하지 못할 때. 일하는 엄마라 놓친 건 아닌가 싶어 내심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 그렇게 온다. 


우리는 종종 본전 생각을 많이 한다.


지난겨울이었다. 아이 롱패딩을 사면서 괜한 다툼이 생길 뻔했다. 본디 긴 패딩인데 굳이 치수를 크게 입힐 필요가 있을까 해서 정사이즈로 입히자는 나와, 그래도 내년 겨울까지 한 번 더 입혀야지, 하며 한 치수도 아니고 두 치수를 크게 입히려는 남편과의 밀당. 


값비싼 옷을 입힐 만큼은 아니지만 이왕 입힐 거면 맵시 있게 입히고 싶은 게 부모 마음. 하지만 옷 사이즈 앞에서 우리는 잠시 여러 가지를 고민한다. 이번 겨울에만 입힐 것인가, 내년 겨울까지 입힐 것인가. 부모는 그렇게 아이 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가 많다. 


(100 인생 그림책, 하이케 팔러 글 /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결국 신랑의 뜻대로 두 치수 크게 패딩을 구매했고, 아이가 패딩을 입을 때마다 “끌리지 않게 조심해”라는 말로 죄 없는 애를 다그쳤다. 며칠 뒤에 안 사실이지만 다행히 그 패딩은 밑 두 단에 지퍼가 달려서 사이즈 조절이 가능한 패딩이었다는 것.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패딩 만든 업체에 '좋아요'를 잔뜩 눌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례없는 개학 연기, 4월 입학   


조금 전, 초중고등학교 개학이 4월로 다시 연기됐다는 속보가 떴다. 바이러스 확산 방지 차원이라 부모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4월 입학이라니. 역시, 우리의 내일은 알 수 없다. 상상도 못 했던 3월을 지나 다시 4월을 기다려야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입학식 때 입힐 옷이며, 봄옷을 여벌로 꽤 샀던 터라, 화사하게 입힐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4월이면 두께감이 맞지 않으려나?’ 다시 옷장을 살핀다. 두께감이 조금 있는 점퍼도 그냥저냥 옷장에서 봄을 맞겠구나. 이럴 땐 괜한 부지런함이 쓸모가 없는 순간이다.  


봄옷 살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아이가 크는 속도에 맞추려면 계절마다 옷을 사야 될 판이겠다, 라는 생각에 이번엔 아예 지금 치수보다 더 큰 치수로 샀다. ‘이번엔 잘 골랐어’ 만족하는데 치수에 불만이 없겠다 싶었던 남편은 한술 더 떴다. 봄 점퍼를 사면서였다. “점퍼는 좀 커도 돼” 하며 더 큰 치수를 고르는 게 아닌가. “이럴 거면 성인 코너에서 사지 그래”라고 말할 뻔했다. 입혀 보니 점퍼가 허벅지까지 내려가는 뒤태. “옆집 형아 옷 빌려 입은 줄 알겠다” “빨면 또 줄어들어. 그리고 애 크는 속도 봐.” 


결국 우리는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본전을 아주 빼먹을 작정으로 형아 뻘 크기의 옷을 구매하기로 한다. 애 옷은 크게 입혀야 한다는 불문율에 우리도 그렇게 동승하며 애를 키운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사는' 우리 


애 옷을 그렇게 구매하며 우리는 생각한다. 인생을 아이 옷 고르듯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을 살지 않고 내일을 위해 사는 하루. 보장된 미래도 아닌데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그 어떤 날을 위해서 오늘을 무심히 소비하며 살고 있다. 잘 사는 것(buy)과 잘 사는 것(live)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쯤 본전 생각 없이 만족할 수 있을까. 그리고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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