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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경 Mar 28. 2020

온 힘을 다해 나에게 집중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지진과 같은 변화와 에너지를 나누는 순간

공감이란


벌써 작년 11월의 일이다. 하던 일을 접고 신랑 따라 세종시로 이사를 온 지 한 달째였다. 부산에서 울산, 울산에서 다시 세종시로. 꽤 먼 거리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생활 반경도 확 달라졌다. 쓰는 말투부터 달랐고 갈 수 있는 범위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생에 지각변동이 제대로 생긴 것이다. 마흔한 살, 새로운 시작이 제대로 펼쳐지려나, 기대감 반 걱정 반으로 적응하고 있던 중에 이들의 강연을 만났다. 


한 집에 같이 사는 사이기도 한 정혜신 박사와, 이명수 심리기획자. 두 부부의 강연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마 위로받고 싶은 공간이 간절히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당신이 옳다>의 저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정혜신 박사의 글을 읽고 위로받은 적이 많았는데 드디어 만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아니, 그 고민은 지금도 ing형이다.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육아를 선택하기에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경력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육아를 완전히 잘 해내느냐, 그것도 대답할 수 없다. 그저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까 봐, 그렇게 다시 나는 불안을 덮고 나의 17년 작가 이력과 7년 육아 이력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그 갈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이들의 강연을 만나게 됐다.  



많은 엄마들이 강연장에 모였다. 일에 치여 살 때는 그랬다. 강연과 행사 소개 글을 브리지 원고로 쓰면 썼지, 거기에 갈 생각은 엄두도 못하고 살았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바보 같았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마음을 위로받고 응원받을 곳을, 발품 팔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그동안 정작 마음은 살피지 못하고 살았구나. 


공감:

한 존재가 비로소 정신적 맨몸으로

다른 한 존재를 만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

지진과 같은 변화와 에너지를 나누는 과정, 그 자체.

(강연 내용 중에서)


공감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였다. 얘기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공감이라면 자신 있다 생각했는데 '공감'의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 보게 만들었다. 과연 아이에게, 그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해 공감하고 있는가.


두 부부에 따르면, 공감은 한 존재가 비로소 정신적 맨몸으로 다른 한 존재를 만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나에게 집중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귀한 말씀이다. 

그리고 자녀와의 공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 역시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게 한 시간.



공감의 조건


방송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를 섭외할 일이 참 많다. 인터뷰할 대상을 찾아 방송이라는 매체로 나올 수 있도록 하려면 많은 시간 동안 오랜 이야기와 설득이 필요하다. 그때 나는, 대단한 섭외의 노하우를 가지고 임하기보다 오로지 하나의 마음으로만 상대를 만난다. 바로, 진심. 


마음을 다해 듣는 일부터 먼저 한다. 어떤 상황인지, 무엇이 어려운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자연적으로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가까워지고 상대는 빗장을 살짝 풀어준다. 공감만으로도 마음이 열린 것이다. 어디에 당신의 문이 있는지, 당신과 만나려면 어느 방향으로 난 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지 힌트를 준다.   


얼마 전까지 울산에서 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고 나서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나의 상황을 스스로 먼저 공감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런 마음과 먼저 마주하는 일이 시급했었다.


그것조차 버거워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있을 때 나를 오랫동안 봐온 선배들은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해준 것은 다름 아닌 공감이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라는 질책이 아닌 현재의 마음 상태를 먼저 살펴봐주었다. "그래서 너 지금 괜찮니?"라고 물어봐 주었던 공감. 마음에 집중해 주는 '사람'들로 인해 '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꽤 능력 있는 사람이고 다시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리랜서 작가들이 품은 막연한 불안감은, 그렇게 자신을 향한 공감부터 시작해야 벗어날 수 있다. 아니 완전히 벗어나는 게 아니라 한 집에서 함께 살 수 있다. 수 많은 내가 살고 있는, 마음이라는 집. 자신과의 공감이 잘 되어야 잠식당하지 않고 그 불안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 힘은 마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날 때 더 위대해진다. 위로가 필요 때는 공감력이 높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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