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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경 Nov 17. 2019

그대는 날마다 꽃이다.

시들지 않는 마음

-꽃, 사치품이 되고 마는 사랑 


연애는, 사랑을 시작하겠다고 두 사람이 선언하는 순간부터 식을 일만 남는다. 불행히도.

다만 감정을 자주 데우는 노력이 있어야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 한창 데이트 하며 서로에게 집중하던 시절, 그때는 꽃을 자주 선물 받았다. 하지만 결국 꽃다발은, 대접 받지 못하고 사치품 취급을 받고 말았다. 

     

-꽃 들고 걱정 


꽃값도 아깝겠지만 그보다 꽃을 선물 받을 때는 걱정도 함께 손에 드는 기분이다. 사랑 하는 사람이 주는 선물이라면 뭐든 기쁘겠지만, 꽃은 선물 받는 동시에 시드는 일부터 걱정해야 한다. 예쁘다는 생각은 잠시, 이 아이를 어디에 둬야 하지, 얼마 못 가서 시들시들할 텐데, 그걸 지켜보는 일도 마음 편치 않다.


차라리 화분을 주지, 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상대가 눈치를 챈 건지, 본인도 아깝다 생각했는지 결혼 후 기념일에도 꽃을 선물 받는 일은 없다. 그게 서운한 적도, 없다.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 대충 해. 


융통성이 없냐, 바보 같이 살지 마, 그런다고 세상이 알아줄 것 같아? 

너만 이용당해, 멍청하게 살지 말고 약아 빠지게 살라구. 


이런 충고성 질타를, 혹은 이런 눈빛을 받을 때가 있었다. 


스스로도 묻는다. 넌 왜 이렇게 열심히 하니. 그 질문의 답은 항상 그랬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가 아닌 기분이 드니까. 대충 원고료에 맞는 적당한 선까지만 일해, 라는 태도로 일하다 보면 ‘좋아서 하는 일’이 그냥 ‘노동’이 되고 마는 것 같았고, 그러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적당히 해도 되고 무리해서 일을 찾지 않아도 되는데 일을 찾아서 하는, 내가 생각해도 참 피곤한 스타일이다. 


그 날도 원고를 쓰기 위해 카페로 가던 길이었다. 고개를 돌리다 마주친 작은 꽃집. 여기 꽃집이 있었나, 싶었는데 눈길은 끈 건 진열대의 화분이 아니라 꽃집 이름이었다. 



그대는

날마다

꽃이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꽃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꽃 보다 꽃집 이름을 더 예쁘게 짓다니, 라는 생각과 함께 꽃을 마치 사기라도 할 것처럼 문 앞에서 오래 이 문장을 바라보았다. 


풀리지 않는, 밀린 원고 생각을 머리에 잔뜩 이고 카페로 가던 길이었다. 꾸역꾸역 글을 뽑아내고 있는 건 아닌가, 억지로 하고 있진 않은가, 질문을 던지고 있을 즈음이었는데 이 예쁜 꽃집 이름이 용기 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날마다, 우리는 꽃이다. 전력을 다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하루를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 모두 꽃이다. 시들지 않는 꽃. 시들지 않는 마음. 고된 원고 작업으로 씨름 중인 나에게, 내가 뭐하고 살고 있나 생각이 드는 순간에, 지금 그 시간도 꽃이라고, 말해 주는 듯 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 간절히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헛된 시간이 아니라고. 


뭘 위해서 너는 그렇게 살고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할까. 무엇을 위해서 능력 밖의 전력을 다하고 있는 걸까. 아무도 강요한 적 없는 일상을 자처해 사는 걸까. 


다만, 소진되는 시간이 아니라 누적되는 시간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진심을 다하는 게 순진한 탓이 아니라고, 전력을 다하는 게 멍청해서가 아니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열정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 열정을 품고 있는 것이 스스로에게 미안해지지 않도록. 

내일의 내가 오늘을 후회하지 않도록. 부디,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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