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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경 Nov 17. 2019

두려움은 시골로 데려가
산책을 시켜라

감정을 인지하고 이름 달아 주기 

인생은 울기 좋은 장소가 필요하다, 종종. 


울기 위해 작정할 때가 있다. 이렇게 작정했을 때는, 제대로 울어야 한다. 울기 좋은 장소, 울기 좋은 시간을 골라야 한다. 당장 쏟아내지 않고 넘어가면 내일은 마음이 더 많이 헐게 된다.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서>, 크리스텔 프티콜렝 (2017, 현자의숲)


작가 생활 시작하고 5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때도 울 곳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무작정 극장을 찾았던 일이 떠오른다. 


방송의 ‘방’도 모르고 라디오 작가 일을 시작했다. 새벽 6시에서 7시, 출근길 영어 프로그램을 할 때였는데 한 시간 방송을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방송이 끝나면 스텝 회의, 그리고 다음 방송 준비를 위해 저녁까지 아이템을 찾고 원고를 쓰고 수정하고. 


신입 작가에게 퇴짜는 일상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원고를 퇴짜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어떤 날은 오프닝을 쓴 종이가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빨간펜이 그어진 원고를 돌려 받는 날도 있었다. 작가 출신의 피디는 더욱 과감하고 꼼꼼하게 원고를 수정하고 다듬어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2년 정도의 치열했던 시간이, 아무나 받지 못할 비싼 작가 수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감사한 일이다. 


다음 날 오프닝 한 장을 쓰기 위해 하루 종일 퇴짜를 맞아가며 썼다. ‘재밌게’ 콩트를 쓰기 위해 음악 나가는 3분 30초 안에 수정을 당하기도 했다. 퇴짜를 맞을수록 작가적 오기가 생겼고, 더 잘 쓰고 싶은 욕심,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때는 24시간, 다음 날 아이템과 원고거리를 찾아 헐떡거리는 생활을 하던 때였다. 


한마디로, 작가 수업을 혹독하게 받았던 거였는데, 이제 막 작가를 시작한 방송무식자로서는 그 모든 시간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물론, 아무 것도 모르는 작가를 키운 담당 피디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방송 일은, 경력이 되려면 6개월은 버텨야 한다, 라는 말을 듣고 무진장 버텨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매일 다음 날 아침이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매번 수정되는 원고, 다시 써야 하는 괴로움은 아침마다 ‘이 일이 내 일이 맞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못 써내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은 사실, 그때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숙명 같은 그 불안을 안고 시작했던 작가 생활. 


5개월 차가 첫 번째 찾아온 큰, 고비였다. 그날도 실수 연발에, 원고는 풀리지 않고 다시 새로 써야 할 상황에 놓인데다 쓴 소리까지 듣고서, 자괴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것이다. 울 곳이 필요했다. 


갈 곳이 없어 무작정 찾아간 곳은 극장이었다. 사실 도피하고 싶은 곳이 필요했을 지도 모르겠다. 

회사 화장실은 너무나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공간이었으므로. 


그때 고른 영화가 바로 <국화꽃 향기>였다. 이 영화를 고른 건 순전히 “들어가면 울고 나온다”라는 관객 평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하지만, 작정하고 들어가면 영화의 슬픈 장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서둘러 울어야 한다. 


기억컨대, 흑백 화면에 ‘국, 화, 꽃, 향, 기’ 라는 다섯 글자가 뜨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였다. 울기 시작했다. 서럽게 울었다. 숨을 헐떡이며 울었다. 그때 나오는 울음을 틀어막지 않고 소리 냈다면 영화 상영이 중단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가. 왜,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가, 라는 생각에 서러움에 복받쳐 그 해에 울어야할 눈물의 분량을 모두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극 후반부에 여주인공 희재가 세상을 떠날 때는 사실 퉁퉁 부은 눈이 더 괴로웠던, 웃지 못 할 추억이 있다. 



슬픔에게 모차르트를 들려주고, 

분노를 극장에 데려가라. 

두려움은 시골로 데려가 산책을 시켜라. 


-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자크 살로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껄끄러워 지는 일을 특히나 싫어하는 탓에, 분출하기보다 감내 하는 쪽이 더 많았다. 상대가 기분이 좋다면 내 감정쯤이야, 하는 생각. 살면서 참고, 견디는 건 꽤나 잘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나의 감정을 많이 무시하며 살았던 건 아니었나, 생각할 때가 많다. 


슬픔, 분노, 두려움, 수시로 찾아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인지하고 때에 맞게 그 감정을 여러 방법으로 다독이며 살펴 주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1년 전 쯤 읽었던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서>라는 책은 이런 감정을 만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감정 관리에 참 무심했다는 반성을 하게 했는데, 지금껏 감정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구나 라는 생각. 감정의 좋고 그름을 나눌 것이 아니라, 나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만 애쓸 것이 아니라, 그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감정에 이름부터 붙여 주기.

지금 나를 사로잡는 그 감정의 근원은 무엇인지 감정 계좌 추적하기. 

그리고 자각하기. 


오늘 나의 기분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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