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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May 08. 2017

직업으로서의 편집자

겉에서 본 편집자와 일하면서 느끼는 편집자는 참 다르다.


사실 다르다는 말은 좀 어색하다.

겉에서 본 편집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으니까.

애초에 알고 있는 정보 자체가 없으므로 비교하기 애매하다는 거다.

겉에서 보았을 때 편집자란 막연히 '책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일에 뛰어들었다.


직접 일을 해보니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사람은 맞다.

그런데 책을 쓰는 사람은 작가이다. 그럼 편집자는 뭐지?

편집자는 원고라는 원석을 가공해서 책이라는 보석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절대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일하면서 느끼는 편집자는 이렇다.


일단 회사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본인이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지 못한다.

대신 회사 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망해도 본인에게 타격은 없다.

하지만 매출 압박이 있는 회사라면 매출이 나지 않을 경우 매일이 괴로울 수 있다.


본인은 큰 그림을 짜고, 세부적인 일은 다른 사람들이 주로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데 능숙해야 할 필요가 있다.


책의 내용도 내용인데 꼴을 잘 이해해야 한다. 표지, 두께, 종이 질 등등.

왜냐하면 글을 책으로 '만드는' 사람이니까.


구성 잘 짜는 것보다는 기획, 콘셉트를 잘 짜야한다.

결국은 사람들이 혹할 만한 느낌으로 잘 팔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같다.

책이라는 '상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인 것.


방송으로 보면 PD, 영화로 보면 감독이다. 정말로.

하지만 영화감독보다는 방송 PD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해야 되는 거, 잘 팔리는 걸 만들어야 하니까.


팔리는 책을 만든다는 건 결국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 뭔지 조사하고 고민해서,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게 대체 뭔지 모르겠다.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위 '평범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힘들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회의가 조금씩 드는 것 같다. 어렵다.

차라리 그냥 원고랑 구성만 다듬는 게 나은 것 같다.


알고 지내던 편집자가 '나는 기획을 싫어했어.'라고 했던 말이 점점 와 닿는 순간이다.

물건 파는 데는 관심이 없고 그냥 '잘 만들고' 싶을 뿐인데,

알고 보니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거였다. 마케팅과 한 끗 차이다.


오히려 더 어렵다. 팔기만 하는 게 아니라 '팔리고', '좋은' 걸 만들어내야 하니까.

게다가 자기가 직접 내용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이 참 많으면서도 참 없는 직업이다.


직업으로서의 편집자,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지금,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계속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는지, 계속하고 싶은지

하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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