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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Aug 15. 2017

예술과 괴로움의 상관관계

  요즘은 통 글이 써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딱히 괴로운 일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달, 계약직이었던 나는 정규직이 되었으며 안 맞던 상사와도 잘 지내는 법을 조금이나마 익혔다. 다툼이 많던 연인과도 요즘은 크게 싸우지 않고, 집안에도 딱히 안 좋은 일이 없다. 물론 이런저런 자잘한 나쁜 일들은 있지만 정말 힘들어 죽겠다! 싶기까지 한 깊은 괴로움은 거의 없다.


  왜 글이 써지지 않을까 고민하다 세운 가설은 이렇다. 예술과 괴로움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 그걸 속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병이 난다. 흔히 화병이라고 하는 그것이다. 슬픔, 분노, 고통 그 어느 것이든 밖으로 표현하고 표출해야만 한다. 아마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도 계속 듣기 힘든데, 나쁜 이야기를 듣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말을 하지 않게 된다. 혹은 아예 성향적으로 처음부터 안 좋은 이야기는 하기 싫어하거나, 마음을 꺼내놓는 데 서툴러서 말할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찾은 표현법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글로 괴로운 마음, 힘든 상황을 표현하다 보면 점차 마음이 가라앉으며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괴로워하는 것이 얼마나 부풀려진 걱정이었는지 깨닫게 되곤 한다.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사실 언어보다는 그림, 장면이 사람의 감정과 더욱 닮아 있다. 언어란 하나의 규격화된 상자와 같아서, 언어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수많은 감정을 여러 가지 상자에 담아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상자는 내가 아니라 남들이 만든 것이므로, 마음의 정리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제한하는 수단이 된다. 그림은 제한이나 제약 없이, 정말로 자유롭게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풀어놓을 수 있게 해준다. 잘 그리려고 해서는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으므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그려야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꽥꽥 지르는 사람이 꽤 있는 것처럼, 음악도 괴로움과 친구이다. 목으로 큰 소리를 내거나, 몸을 흔들며 춤을 추면 마음과 몸이 하나 되면서 정신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너무너무 괴로워서 몸을 움직일 힘도 없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나 대신 소리를 내 줄 악기를 연주하면 좋다. 음악을 그냥 들으면 자기 자신의 괴로움에 더욱더 빠져들 확률이 높아지는데, 자신이 직접 연주하면 자기도 모르게 연주에 집중하게 되므로 오히려 괴로움을 연주 안에 녹여내거나 물리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예술가들 중에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이해가 된다. 정신적으로 불안하여 그 불안함을 표출하기 위해 예술을 찾게 되고 그 와중에 그 분야에서 성공도 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던 것 아닐까.


  세상 일은 늘 하나의 가설로 설명할 수 없으므로,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정갈한 삶을 살며 매일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기분 좋은 일들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일에 집중하게 되어 오히려 예술 등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하지만 마음이 괴로울 때는 예술을 찾게 된다.


  예술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게 뭐라고 그렇게 난리야? 라든가, 하등 쓸모도 없는 데 돈을 너무 쓰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의 입장도 이해한다. 하지만 마음이 고통의 바다를 떠다닐 때 예술의 힘을 빌려 괴로움을 떨쳐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예술과 괴로움의 상관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예술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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