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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Jul 11. 2020

사랑도 동업이 되나요?

애인이랑 유튜브 같이 하다 말아먹은 썰 - EBS <나도 작가다> 공모전

“시작은 엄청 좋았지? 근데 끝이 아주 엉망일 거야.”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기분이 상한 채로 씩씩거리며 타로 숍을 나섰다. 함께 왔던 친구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 다 잘되고 있고, 나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친구는 나를 위로하며 원래 타로는 잘 안 맞는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결국은 대실패였다.


그가 있어서 시작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무너질까 전전긍긍했으며, 결국은 그가 떠나면서 실패했다. 망한(!) 음악 유튜브에 대한 이야기다.




“같이 유튜브 한번 해볼래?”


그와 만난 건 대략 7년 만이었다. 나의 한 학번 선배이자 한 살 오빠였던 그를 록 동아리에서 만났다. 조금 더 달콤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선택지가 록 동아리뿐이었기 때문에 들어간 그곳은 역시나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동아리 사람들과는 음악에 대한 취향부터 시작해서 성격과 성향까지 하나도 맞는 게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편한 사람이었다. 동아리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무슨 말을 건네도 바보같이 웃던 사람 좋은 선배. 그렇게 일 년을 간신히 활동하고 그만두었을 때, 유일하게 아쉬워해 주던 사람이 그였다. 하지만 그와도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고, 스무 살이던 나는 어느덧 서른한 살, 6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노래 부르는 걸 워낙 좋아했던 터라 동아리 보컬을 그만둔 후에도 꾸준히 노래를 해왔다. 합창단, 뮤지컬 동호회, 심지어 슈퍼스타 K 오디션까지. 여러 사람에게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받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가수가 될 실력은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정말로 잘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한참 부족하다고 느꼈다. 노래는 그저 노래방에서나 부르는 것이라고, 남들 앞에서 뽐낼 만한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SNS로 그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식사나 한번 하자는 얘기였다. 그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에 나는 흔쾌히 그를 만나러 나갔다. 그는 프리랜서 성우이자, 무명의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가고, 노래를 했다. 그리고 맥주를 한잔하러 갔는데 그가 갑자기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함께 음악 유튜브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저는 그렇게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랑 하시는 게 나을 텐데요.”

“아니야, 너 잘해. 너 정도면 충분해. 같이 해보자.”


두려웠지만, 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노래하는 일을 꿈꿔왔으니까. 그렇게 음악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녹음과 영상 촬영을 하고, 자투리 시간에 다음 영상을 준비했다. 매일 퇴근 후 지친 몸으로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준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 꿈을 향해 가는 하루하루가 충만했고,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벅찬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유튜브 촬영 당시의 작업실 풍경


구독자 수는 겨우 몇십 명이었지만 내 노래를 더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이런 기회를 준 그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래서 그의 말이라면 대부분 들어주었고, 무엇이든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었기에. 실질적으로도 녹음과 믹싱, 영상 편집 모두 그가 도맡아 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 인생 최고로 행복하다고 느껴지던 그 순간, 그에게 갑작스레 고백을 받아버렸다.


“나 사실 너를 좋아해. 우리 만나보자.” 


당황스러웠다.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한 번도 이성으로 본 적은 없었는데. 고백을 거절하고 나자, 이제 음악을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 그는 상처를 입은 듯했고, 내게 조금 감정적으로 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 달쯤 후 그가 다시 고백했을 때, 나는 승낙했다.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함께 하는 음악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여기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승낙의 가장 큰 이유는 이번에 거절하면 이 활동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음악 유튜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백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와의 연애는 시작부터 엉망이었던 셈이다.


연애를 시작한 이후 첫 한 달은 기뻤다. 꿈과 사랑, 둘 다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가까워진 우리는 아귀가 잘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상처 냈다. 동료로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연인으로서는 파국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내가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나에게 아주 잘해주었다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면 마구 화를 내곤 했다.

  

그와의 싸움은 늘어갔고, 더불어 나의 두려움도 커져갔다. 그와 다툴 때마다 내가 잃을까 두려워했던 건 그의 사랑이 아니라 내 꿈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사과를 하고 그의 마음을 풀어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비굴하게 느껴졌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져주는 거라며 스스로 위로했지만, 사실 이 활동을 지켜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마땅치 않은 행동을 받아주었다는 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3개월쯤 위태롭게 관계를 이어오던 어느 날, 우리는 크게 싸웠고 결국 그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어버렸다. 그리고 관계를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이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에게 이별을 고함과 동시에 음악 유튜브도 막을 내렸다.




활동기간 4개월. 구독자 300명. 영상 수 17개. 누가 보면 별것 아닌 활동이었겠지만, 내게는 삶의 모든 기쁨을 잃은 것과 같았다. 한동안 나는 꿈을 잃은 슬픔에 몸부림쳤다. 얼마나 아쉬웠던지,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에게 연락해 헤어짐과 상관없이 활동만 다시 하자고 말해버렸다. 물론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타로의 예언대로, 음악 유튜브는 완전히 실패했다.


슬픔 속에서 생각했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을까. 왜 실패했던 걸까. 내 두려움은 왜 현실이 되었을까.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였음을. 애초에 그가 제안해서 시작하게 되었고, 그가 많은 역할을 했으며, 그가 없이는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사실 그의 능력에 기대서 활동해왔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내 능력이 모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늘 그의 감정 기복을 두려워하고, 관계가 무너져 활동하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심플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두려울 것이 없고, 실패할 수도 없다. 

    

실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게 실패란 구독자 수가 적은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능력을 길러 혼자 활동할 수 있게 되고, 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냥 그 자체로 성공이고 행복인 것이다.


거의 왕초보 수준인 기타를 다시 잡았다. 음악 연습실을 빌려서 노래를 연습하고 녹음을 했다. 음악 이론, 작사·작곡에 대해서도 많은 책을 읽었다. 혼자서 음악 공부를 시작한 지 어언 6개월. 아직도 나는 걸음마 중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내 안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나의 행복과 성공을 다른 사람의 손에 온전히 맡겨놓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 계속해 나간다면,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면 도저히 실패할 방법이 없으니까.


글을 마치며,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그는 내게서 꿈을 앗아간 원망스러운 사람이지만 동시에 내가 음악을 시작할 수 있게끔 해준 은인이기도 하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감히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글을 쓰며 확인해 보니 어느덧 구독자가 1천 명을 넘었다. 구독자 300명일 때 그와 헤어졌는데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은 6개월간 구독자가 3배로 불어난 것이다. 이렇게 괜찮은 콘텐츠를 만들어낸 우리니까, 나도 그도 앞으로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혼자서 더 단단해져서, 두려움 없이 실패에 맞서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시작한다. 홀로 설 수 있도록 스스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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