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과인간 Aug 12. 2020

나를 상처 주려는 사람들

  살다 보면 상처 주는 말을 듣는 일이 종종 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그런 순간들은 있고, 그건 아무래도 내 힘으로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일 년 가까이 고민해온 퇴사 결심을 상사에게 전했다. 이유를 묻길래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라고 대답했는데, 그 외에 회사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어와서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저런 점들이 어려웠다고. 그런 일들에 많이 지쳤다고. 그러자 그가 한 말은 이랬다.


  "그럼 도망가는 거네?"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회사에서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쁜 뜻으로 말한 것을 깨달았음에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때 아니라고 말하면 강한 긍정처럼 보일까 봐 쿨하게 도망가는 거면 어떠냐, 도망가는 건 잘못이 아니라고 배웠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늘 상처 주는 말들을 담고 그 사람과 헤어져 혼자 남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그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나, 정말로 도망가는 게 맞나? 하며 스스로 의심했고, 그럼 이 세상 모든 퇴사자는 도망가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으며, 도망가는 거 아닌데 왜 마음대로 판단을 내리는 건지 화가 났고, 차라리 그냥 도망가는 게 아니라고 말할 걸 그랬나? 뭘 있어 보이겠다고 마치 인정하는 듯한 저런 말을 했지, 라며 결국에는 자책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팀을 옮기겠다고 했을 때 똑같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퍼붓던 전 팀장님이 생각났다. 뭐라고 했던가, 2년 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다른 팀에 가면 뭐 네가 잘할 것 같냐, 와 같은 류의 유치한 저주였다. 그때도 상처를 받았고, 기분이 엉망인 채로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이 기억이 문득 떠오르며 깨닫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1. 이건 내가 자책할 일이 아니고, 그들이 내게 사과해야 할 일이다.

  그때도 나는 어리바리하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렇게 말할 걸, 저렇게 말할 걸 하며 자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잘못한 건 그들이므로 내가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2. 그들은 사실 먼저 내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 했다.

  이건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었는데, 그 두 사람 모두 사실은 내게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자기 밑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떠나겠다고 선언한 그 사실에 배신감을 느껴서 내가 미워졌던 것 같다. 게다가 두 사람 다 나의 퇴사 소식을 들은 당일에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그 미움을 내게 쏟아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둘다 남의 입을 통해서 듣기도 했다. 그러니 더 미웠을지도) 평소에도 말을 예쁘게 하던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지 막말을 하던 사람들도 아니었는데 유독 둘 다 특히 퇴사 소식을 들은 날만 내게 날선 말들을 쏟아냈다. 그건, 그들이 먼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던 거다.




  그런 사정이 있었으므로, 그들을 이해하고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준 상처(?)는 단순히 조직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었다. 반대로 그들이 나에게 던진 모진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나쁜 의도가 명백한 말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굴었다는 건 그들의 부족함을 드러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저 유치한 감정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조금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내가 그만두는 게 싫었쩌요, 오구오구. 


  게다가 가장 좋은 점은 2년 전에 내게 퍼부었던 수많은 팀장의 막말은 기억도 잘 안 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과거의 인연에게 말로 받은 상처는 별 거 아니었다. 이 말도, 지금은 나를 속상하고 아프고 화나게 하지만 결국은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도 동업이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