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상처 주는 말을 듣는 일이 종종 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그런 순간들은 있고, 그건 아무래도 내 힘으로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일 년 가까이 고민해온 퇴사 결심을 상사에게 전했다. 이유를 묻길래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라고 대답했는데, 그 외에 회사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어와서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저런 점들이 어려웠다고. 그런 일들에 많이 지쳤다고. 그러자 그가 한 말은 이랬다.
"그럼 도망가는 거네?"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회사에서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쁜 뜻으로 말한 것을 깨달았음에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때 아니라고 말하면 강한 긍정처럼 보일까 봐 쿨하게 도망가는 거면 어떠냐, 도망가는 건 잘못이 아니라고 배웠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늘 상처 주는 말들을 담고 그 사람과 헤어져 혼자 남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그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나, 정말로 도망가는 게 맞나? 하며 스스로 의심했고, 그럼 이 세상 모든 퇴사자는 도망가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으며, 도망가는 거 아닌데 왜 마음대로 판단을 내리는 건지 화가 났고, 차라리 그냥 도망가는 게 아니라고 말할 걸 그랬나? 뭘 있어 보이겠다고 마치 인정하는 듯한 저런 말을 했지, 라며 결국에는 자책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팀을 옮기겠다고 했을 때 똑같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퍼붓던 전 팀장님이 생각났다. 뭐라고 했던가, 2년 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다른 팀에 가면 뭐 네가 잘할 것 같냐, 와 같은 류의 유치한 저주였다. 그때도 상처를 받았고, 기분이 엉망인 채로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이 기억이 문득 떠오르며 깨닫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1. 이건 내가 자책할 일이 아니고, 그들이 내게 사과해야 할 일이다.
그때도 나는 어리바리하게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렇게 말할 걸, 저렇게 말할 걸 하며 자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잘못한 건 그들이므로 내가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2. 그들은 사실 먼저 내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 했다.
이건 생각해보지 못한 점이었는데, 그 두 사람 모두 사실은 내게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자기 밑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떠나겠다고 선언한 그 사실에 배신감을 느껴서 내가 미워졌던 것 같다. 게다가 두 사람 다 나의 퇴사 소식을 들은 당일에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그 미움을 내게 쏟아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둘다 남의 입을 통해서 듣기도 했다. 그러니 더 미웠을지도) 평소에도 말을 예쁘게 하던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지 막말을 하던 사람들도 아니었는데 유독 둘 다 특히 퇴사 소식을 들은 날만 내게 날선 말들을 쏟아냈다. 그건, 그들이 먼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던 거다.
그런 사정이 있었으므로, 그들을 이해하고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준 상처(?)는 단순히 조직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었다. 반대로 그들이 나에게 던진 모진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나쁜 의도가 명백한 말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굴었다는 건 그들의 부족함을 드러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저 유치한 감정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조금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내가 그만두는 게 싫었쩌요, 오구오구.
게다가 가장 좋은 점은 2년 전에 내게 퍼부었던 수많은 팀장의 막말은 기억도 잘 안 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과거의 인연에게 말로 받은 상처는 별 거 아니었다. 이 말도, 지금은 나를 속상하고 아프고 화나게 하지만 결국은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