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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Feb 01. 2023

#2. 슬픔에 유통기한이 있다면(1)



  우울증을 떠벌리고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언제까지고 비밀로 꽁꽁 숨겨둘 수는 없었다. 두더지 마냥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무슨 말만 하면 울기부터  하는 나를,  하루 종일 정신이 딴 데 팔려 허둥대는 나를, 설명하지 않는 것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였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언제나 해피엔딩인 것만은 아니다. 가족에게도 온전히 이해힘든 것이 마음의 병이.



  아빠는 일단 의심부터 했다. 밥도 먹고 회사도 가고 가끔은 예능을 보면서 깔깔 웃기도 하는 내가 우울증 일리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당신의 자식이 그런 약해빠진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셨다. 아빠는 나에게 운동 처방을 내렸다. 내가 아픈 건 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운동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아빠는 내가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아프다고 했다.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으면 그런 느긋한 소리는 할 수 없다고. 먹고살 걱정이 없으니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다고. 아빠에게 우울증은 질병의 영역이 아니었다. 순전히 의지와 신념의 문제였다.



  아빠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빠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아파졌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보다 내 심장에 칼을 깊숙하게 꽃을 수 있다니. 사랑이란 잔인하다. 나는 여전히 세 살배기 꼬마처럼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더 이상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나를 더욱 깊은 암굴로 몰아넣었다.




  2018년에는 더 이상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일을 하고 싶었지만 하고 싶지 않았고 무리 속에 어울리고 싶었지만 사람이 무서웠다. 조심스레 퇴사 의사를 밝힌 나에게 사수는 손을 내밀어 주었다. 혼자서는 못 가도  같이는 갈 수 있지 않겠느냐. 나는 갈급하게 사수의 손을 잡았다. 이대로  전락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서 나는 일명 수도꼭지로 불렸다. 여자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울다 생긴 별명이었다. 그래도 나는 지각이나 결근 없이 회사를 다녔다.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병은 나보다 강했다. 사수의 뻗은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매번 그렇게 혼자 무능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 댔다.


  몇 달이 흐르고 사수 입에서 도대체 언제까지 아플 거냐는 소리가 나왔다. 그의 인내심이 뚝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리지 나도 몰랐다. 터널의 끝이 어딘지 알았다면 이토록 괴롭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도 많이 참고 많이 버텼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서둘러 퇴사를 준비하고 한국을 떠났다.



  나를 걱정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 한국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캐나다로 떠났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머나먼 타국에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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