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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은달 Feb 14. 2023

#7. 출생의 비밀(1)

슬픔에 빠져 죽기


  나의 출생에는 비밀이 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황달에 걸렸다. 나는 엄마의 젖을 제대로 빨아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모유 한번 먹이지 못한 둘째 딸은 엄마의 천추의 한이 되었다.


  엄마에게 있어 내가 가진 모든 결점의 원인은 엄마젖을 못 먹었다는 것에 있었다. 어린 나는 유독 빛에 민감해서 미약한 에도 잠을 잘 못 잤다. 배우는 것도 더뎌서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한글을 못 뗐다. 성미는 흐리멍덩하고 야물지 못했다. 맹한데도  한번 고집을 부리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앉은자리에서 버티면 부모님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 되었다. 심약하고 예민한 기질에 툭하면 울고 조그만 일에도 엄마 치마 뒤로 숨기 일쑤였다. 친척 어른들이나 동네사람들이 수군거리면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나이가 먹어서도 그랬다.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었다. 타당한 이유가 없거나 그럴싸한 의미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좀 하는 게, 남들처럼 사는 게 죽기보다 어려웠다. 나는 일에도 사람에도 도통 마음을 못 붙였다. 무엇보다 돈 버는 일에 재능이 없었다. 취직하기가 무섭게 사직서를 냈다. 결국 6번째 직장을 관두고 방에 틀어박혔다. 태도는 보통 주눅 들어 있고 대부분 망상을 하며 보냈다. 이 험한 세상 어떻게 헤치고 살아갈까 부모님의 걱정이 쌓여가던 무렵, 기어코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정신병원을 다녔다.



  정신이 무너지니 감각이 예민을 넘어서 과민해졌다.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 웃음소리, 옷들이 부딪히며 사각대는 소리, 발소리, 볼펜 딸깍 대는 소리, 누군가 다리를 떠는소리. 일상의 소리들이 확성기를 타고 증폭되었다. 햇빛은 너무 밝아서 눈이 시렸다. 두통이 날 정도의 광원에 나는 매일 어지러웠다. 어두운 밤마저 낮만큼 환한 가로등에 비명을 질렀다. 낮밤 없이 각종 조명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생활은 쥐약이었다.


  정신이 쇠약해진다는 건 고통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일이다. 사람들은 정신병자에게 아무것도 기대를 하지 않다. 인간은 자신보다 연약한 존재를 보며 죄책감 없이 비난하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동정한다.


  
  그 무렵의 나는 주로 천장을 보며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종종 방문너머로 엄마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어릴 때 엄마젖을 못 먹고 커서 저렇게 고장이 나버렸나 보다. 애미가 못나서 새끼가 저렇게 아픈가 보다. 엄마는 나를 힐난하지 않았다. 딱히 안쓰러워하지도  않았다. 내 병은 내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원죄였다. 결자해지의 대상이 합쳐지고 흐려지고 뭉그러졌다.



  엄마가 즐겨보는 다큐에는 약한 새끼를 물어 죽이는 비정한 엄마 사자가 등장하곤 했다. 엄마는 자기 새끼를 손으로 죽여하는 어미의 신세에 몰두했다. 엄마는 나를 죽이고 언니만 키울 수 없었다. 나를 죽이지 않아도 괜찮은 인간의 질서에 안심했을까 아니면 약함을 배제할 수 있는 야생의 무정함이 부러웠을까. 엄마는 왜 그토록 동물의 왕국에 열중했을까. 모를 일이다.



  내가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엄마는 옥바라지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감옥에 갇혀있었다. 우리는 각자 죄인이었다. 이게 무슨 연좌제인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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