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직 공무원이다. 국가직 공무원의 삶은 전혀 모른다. 나는 오로지 시청에서만 근무하기 때문에 읍면동 사무소의 사정도모른다.그냥 내 이야기를 하자면,공무원의 2월은 겁나 바쁘다.
공무원은 보고를 한다. 겁나 많이 한다. 주요 업무 보고, 관리 사업 추진 상황 보고, 의회 업무 보고, 브리핑 자료 보고, 주요 통계 자료 보고, 2022년 성과 보고, 주간 행사 보고, 주간 업무 보고. 보고의 개수는 하염없이 늘어날 수 있다. 직장인이 회의 지옥에 빠지듯 나는 현재 보고 지옥에 빠져있다.
나는 회계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수의직이지만 예산 업무를 본다. 지금도 예산 업무는 늘 새롭고 늘 짜릿하다.
연초에는 각종 사업들을 결산하고 정산한다. 쉽게 말해 받은 돈은 다 썼는지 남은 돈은 이자까지 쳐서 잘 반납했는지 상위기관에 보고하는 일이다. 그 해 받은 돈을 그 해 다 썼으면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은 별로 없다. 돈엔 발이 달렸다. 남았거나 익년으로 이월됐거나 반납됐거나 합쳐졌거나 흩어져 있다.
2023년 예산은 2022년에 미리 작업해 둔다. 이걸 본예산이라고 한다. 우리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아니므로 당연히 작년에 계획한 예산과 지금 예산이 다르다. 그래서 또 추경을 한다. 추경은 돈을 더 달라고 하거나 돈을 덜 받는 일이다. 누가 봐도 중요한 업무기 때문에 증빙이 필요하다. 사업 개요서, 사업 보고서, 설명 보조 자료 뭐 이런 거. 자료가 필요하다. 좀 많이.
인사 이동과 인수인계가 마무리되고 민족 최대 명절인 설도 지났다. 그럼 뭐다? 사업하기 딱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사업이라고 거창한 건 아니다. 어떤 사업을 하는지 공고를 하고신청을 받는다. 사업 지침에 맞게 사업 신청자에게 적절한 예산을 배정하고 사업을 정당히 완료한 사람에게 보조금을 주면 된다.
이게 참 말은 쉽다. 사업을 시작하면 문의전화가 쏟아진다. 민원인부터 읍면동 공무원, 심지어 다른 시군 공무원들에게도 문의 전화가 온다. 민원인들의 문의 전화는 당연하다. 나랏돈을 주는 만큼 증빙해야 할 서류도 많고 절차도 까다롭다. 공무원들만 쓰는 용어(예; 교부신청, 교부결정)가 많은 것도 민원인들에겐 큰 장벽이 된다.
공무원이 공무원에게 문의를 하는 건 시스템의 문제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 받았거나 업무에 명확한 매뉴얼이 없으면 신규 공무원들은 다른 시군 공무원에게 물어물어 사업을 해야 한다. 쓸데없이 업무가 가중되는 순간이다.
사업 신청을 받았다면 이때부터가 진짜다. 예산에 비해 너무 많은 신청자가 몰리면 싸움이 난다. 누구는 10주고 누구는 1주면 난리가 난다. 여기저기서 청탁이 쏟아지기도 한다. 기준이 애매하면 부패 공무원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업 지침서는 잘 써야 한다.
여기까지 왔으면 2월은 거의 다 왔다. 마지막 빌런 하나만 피해 가면 된다. 바로 '변심'이다. 지난주에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까먹고 못한 사람, 이제 와서 신청을 취소하겠다는 사람, 신청 내용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속속 발생한다. 여기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공무원의 역량이다. 인생의 예외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인간이듯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에 의연할 줄 알아야 한다.
벌써 2월의 중턱을 넘어왔다. 봄이 오면 좀 한가하냐고? 아뇨. 코로나가 끝나고 각종 축제와 행사가 돌아왔다. 그럼 4월에는 괜찮냐고? 아뇨. 올해는 4월에 보궐 선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