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진실과 예술

1. In Plato's Cave

by 테오
Photographs furnish evidence.

사진은 증거를 제공한다.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그렇게 제출된 사진적 증거가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느냐, 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생각은, (보편적인 생각과는 달리) 그렇지 않다, 가 될 것이다.


A photograph passes for incontrovertible proof that a given thing happened. The picture may distort; but there is always a presumption that something exists, or did exist, which is like what’s in the picture.

사진에 촬영된 것은 분명히 있었던 사건이나 존재하였던 무엇이다. 이것은 없던 것도 상상해서 쓰거나 그려 넣는 글이나 그림과는 다른 사진적 특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포토샵이나 AI로 만들어진 것은, 사진적 이미지 혹은 사진적 그림일 수는 있으나 사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진은 찍힌 taken 것이지 그려지거나 생성된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원본에 포토샵이나 조작을 한 것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엄밀하게 말해서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은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 자체에 이미 색상이나 밝기 같은 세팅이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진은 촬영되는 과정에서 이미 어느 정도 조작된다.


‘촬영된 후’를 기준으로 삼아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필름 같은 경우 현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조작된다. 같은 필름이라도 어떠한 방식으로 현상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디지털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별도로 신경을 안 쓰는 경우 디지털 사진은 sRGB 컬러 프로파일로 읽히는데 이것 역시 하나의 조작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컬러 프로파일로 읽어 들이는 경우 사진의 색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을 사진으로 볼 것인가 혹은 어디까지의 조작을 허용을 할 것인가는 개인 작업자의 선택사항이고 그것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진 작업자로서 나는 내가 만들어 낸 이미지가 사진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내가 내 사진에 과도한 조작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일 뿐이다.


사진에 촬영된 대상이 글이나 그림에 비해서 실제로 존재하였다고 더 믿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적 특성이 되고 사진으로 이야기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업자에게는 하나의 도구가 된다. 다시 말해서 작업자로서는 그러한 측면을 특성으로 활용하면 그만이다. 그림 같은 사진도 있고 사진 같은 그림도 있다. 해당 사진이나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부합하는지가 관건이 된다.


But despite the presumption of veracity that gives all photographs authority, interest, seductiveness, the work that photographers do is no generic exception to the usually shady commerce between art and truth.

사진은 진실인가 예술인가. 즉 사진은 사실을 전달하려고 하는가, 표현을 하려고 하는가. 이것은 경향성의 문제지 구별의 문제는 아니다. 즉 모든 사진은 ‘사실적임’과 ‘표현적임’ 그 둘의 어느 사이에 있다. 완벽히 사실이기만 한 사진도 없고 완벽히 표현이기만 한 사진은 없다. 그러한 양가적인 특성이 사진의 중요한 특성, 즉 ‘사진적 photographic’이라는 표현의 한 측면이 된다.


사실적인 경향이 강한 작업 중에는, 베른트 앤드 힐라 베허 Bernd and Hilla Becher 부부의 작업들과 그 사조를 잇는 듀셀도르프 학파 Düsseldorf School of Photography의 사진 작업들이 있다:


베른트 앤드 힐라 베허 Bernd and Hilla Becher, 『Basic Forms』




표현적인 경향이 강한 작업 중에는, 모리야마 다이도 森山 大道와 이른바 프로보크 Provoke 사조에 포함된 작업들이 있다:


모리야마 다이도 森山 大道, 『헌터 a Hunter 狩人』사진책 이미지


모리야마 다이도 森山 大道, 『헌터 a Hunter 狩人』사진책 영상



이 책에서는 사실과 표현이 모호한 사진 작업, 즉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예술적인 사진 작업의 예로 1930년대 후반 미국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즉 미국 농업안정국의 사진 프로젝트를 들고 있다. 즉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미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는 손택의 칭찬이다. 하지만 결국 손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객관성’을 중요한 요소로 두는 이 다큐멘터리 사진에도 사진 작가들의 ‘주관적’ 미적 가치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객관적이다,라는 당시의 통념에 대한 반박이다.


미국 농업안정국의 사진 프로젝트. 좌측 부터, by 고든 팍스 Gordon Parks, by 워커 에반스 Walker Evans, by 도로시 랭 Dorothea Lange


Although there is a sense in which the camera does indeed capture reality, not just interpret it, photographs are as much an interpretation of the world as paintings and drawings are.

이 부분에서 손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반적으로 사진은 해석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진 역시 하나의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사진의 해석을 글이나 그림과 같은 선상에 놓고 싶지는 않다. 이러한 사진 고유의 해석을 ‘사진적 해석 photographic interpretation’으로 구별하고 싶다.


Those occasions when the taking of photographs is relatively undiscriminating, promiscuous, or self-effacing do not lessen the didacticism of the whole enterprise. This very passivity—and ubiquity—of the photographic record is photography’s “message,” its aggression.

손택은 사진에 대한 이러한 통념, 즉 사진은 객관적이라는 통념이 사진에게 과도한 권력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독재자가, 나는 민중을 위해 아무런 개인 욕심을 부리지 않는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선전하면서 사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역시나 사진에 대한 손택의 불편함을 행간에 드러낸다.


Even for such early masters as David Octavius Hill and Julia Margaret Cameron who used the camera as a means of getting painterly images, the point of taking photographs was a vast departure from the aims of painters.

사진은 ‘사실로서의 매체’라는 통념을 반박하기 위해 손택은 ‘그림으로서의 사진’으로 활용된 경우를 언급한다. 그리고 당시에 사실로서의 사진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그림으로서의 사진의 특성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림으로서 사진의 대표적인 작가들—왼쪽 부터, by David Octavius Hill, by Margaret Came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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