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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우 Jan 04. 2021

마음의 흐름은 보이지 않아도

2011년, 터키, 시데에서 만난 고양이 이야기

2011년 겨울, 터키의 작은 동네 시데에 도착했을 때였다. 타고 온 야간 버스는 깔끔하고 현대적이었지만 밤새 앉아서 쪽잠을 자다 보니 발은 붓고 몸은 굳어 있었다. 3주 정도 여행을 하며 야간 버스에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아직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면 몸은 비명을 질렀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탔다. 간신히 차 한 대가 들어올 만한 크기의 입구를 지나자 아기자기한 지중해 마을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는 예쁜 벽돌이 깔려 있었고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눈을 즐겁게 했다. 지중해의 작은 마을 시데는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을 지금도 활용하고 있었다. 유적들은 지금도 벽으로, 문으로, 장식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겨울임에도 따뜻한 지중해의 햇살과 탁 트인 바다의 풍경은 피로를 잠시 잊게 했다. 멀리 보이는 바다의 움직임과 한가한 이른 아침의 공기는 도시에 방금 도착한 이방인에게 설레는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아직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기는 이른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특별히 들어갈 곳도 없어서 배낭을 멘 채로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그때였다. 새하얀 흰색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두 눈의 색이 달라 신비한 느낌을 주는 고양이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머리를 내 다리에 비벼댔다.


“야옹.”


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겨 준 동네 주민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었다.




보통 우리는 고양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도도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고양이의 습성은 만국 공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터키에 도착한 이틀째부터 이런 고정관념은 깨지기 시작했다. 터키의 고양이는 사람이 부르면 다가온다. 아니 가끔은 부르지 않아도 먼저 몸을 비벼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다. 아니 이 아이들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이런 의문이 풀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스탄불의 갈라타 탑에서 탁심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다양한 악기를 파는 악기 거리가 있다. 악기 거리의 매장 앞에 놓인 매대 위에서 고양이들이 햇빛을 쬐며 평화롭게 잠을 자는 광경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가게 문 앞에는 길거리 고양이와 강아지를 위한 사료들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탁심 광장의 옷가게 안에는 마치 자기 집인 것 마냥 고양이가 누워 있었다. 아무도 내쫓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길거리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먼저 먹을 것을 건넸다. 그리고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먼저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동물들을 좋아했고 먼저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너희가 사람을 피하지 않는 것은 먼저 사람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구나. 수많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건넨 손길과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처음 도착한 지중해의 도시 시데, 이곳에서 몇 세기를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건넨 따뜻한 마음이 한 마리 고양이를 통해 나에게 다가왔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의 마음이 이방인의 지친 마음을 쓰다듬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에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 순간 흰 고양이에게 내 마음을 조금 남겼다. 가끔 동네 사람들에게, 이방인들에게, 행복한 사람들에게, 조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 따뜻함을 나누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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