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동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임대주택 단지로 계획된 베드타운이었다. 나는 평화빌라 ‘가’ 동에 살았는데, ‘가’ 동은 다른 동에서 딱 방 하나를 뺀 크기였다.
평화빌라에서 경비직으로 일하는 김 씨는 말이 많았다. 주민들의 근황을 아는 것도 필수 업무인 사람처럼 그랬다. 얼굴을 아는 주민이 지나가면 벗어둔 모자를 눌러쓰고 툭 인사를 건넸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평화 국민학교가 평화 초등학교가 되었다가 신입생 미달로 폐교 절차를 밟는 과정을 모두 보았다고, 내가 평화 초등학교로 전학 간 날부터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정말 오래 근무하셨네요. 그렇게 반응해야 그는 웃으며 경비실로 사라졌다. 아무튼 그렇게나 낡은 단지였다. 4층 건물로 1호부터 4호까지 있었고, 건물마다 열여섯 가구가 살았다.
나는 평화빌라 ‘가’ 동에 사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외워버렸다. 일부러 귀를 기울이는 건 아니었다. 혼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거나 침대 머리에 기대어 책을 읽다 보면 집중하지 않아도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서 시끄러운 건 반려묘인 살금 뿐이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일주일 전부터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발소리가 들렸다. 살금은 ‘그것’의 발소리만 들리면 꼬리를 뒷다리 사이로 말아 집어넣었다. 꼭대기 층에 사는 주인집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들어가는 발소리, 같은 층 1호에 사는 고등학생 딸이 돌아오는 발소리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앞다리를 접어 배 아래 감추고 눈을 감았다. ‘그것’이 지나갈 때만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라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평화 국민학교에서 평화 초등학교가 되었을 때 말이야… 까지 이어가던 김 씨가 말을 멈췄다. 김 씨는 모자를 휙 벗었다. 정수리 일부를 제외하고 자란 흰머리가 서로 얽혀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학생. 말투에서 불편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는 무엇에서 불편함을 느꼈을까. 내가 그가 해야만 하는 평화동 이야기를 막아서일까.
일주일 정도 됐어요. 누가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에요. 김 씨는 혀를 한 번 쯧 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요 동네 앞 지나가는 개미 새끼도 다 아는 사람이야. 오긴 누가. 김 씨는 모자를 쥔 손으로 뒷짐을 지고 경비실로 들어갔다. 쾅, 소리와 함께 경비실 문이 닫혔다.
집에 돌아와 살금의 물그릇에 물을 채웠다. 살금은 베란다로 이어지는 유리문으로 달려갔다. 유리문에 온몸을 비비며 ‘야옹’하고 울었다. 문을 열어 달라는 신호였다. 살금, 이리 와.거실 벽에 기댄 몸을 일으켰다. 그때 살금의 노란색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빛이었다.
안 돼.살금을 안아 올리며 말했다. 베란다에는 고양이 울타리를 설치하지 못했다. 살금은 똑똑하고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었다. 실제로 그런 적은 없지만 방충망을 스스로 열고 나가버릴까 불안할 정도로 똑똑했다. 2층 정도 높이라면 마음대로 뛰쳐나갈 것이다. 위험해. 그렇게 말하려던 참이었다. 천장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앗, 따가. 쓰라린 느낌에 내려다보니 살금이 발톱을 세워 스웨터 옷깃을 잡고 있었다.
쿵.
한 걸음 크기의 둔탁한 소리였다. 그동안 들어온 발소리를 꼽아보며 누구의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곧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