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기역입니다.
나는 늘 해가 뜨면 잠이 들었다. 아침이라는 건 멀리 떨어진 나라 같았다. 물론 어렴풋하게 들은 기억은 나지만 어떤 모양을 하고, 어떤 색을 띠고, 어떤 냄새가 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가끔 ‘아침’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면 차갑고, 날카로운 바늘이 꽂혀있는 그림이 떠올랐다. ‘밤’이라고 말할 때 느껴지는 푹신함과 아늑함은 확실히 없었다.
엄마에게 아침이 어떤지에 대해 물어보면, 엄마는 ‘글쎄. 밤과 크게 다르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친구들은 모두 아침에 일어나고, 밤이면 잠드는 걸까. 매일 아침이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몇 번 잠들지 않고 아침을 보기 위해 버텨봤다. 그러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밤이었다. 그사이 꾼 꿈에는 늘 아침이 나왔다.
거실로 나가자 여느 때처럼 엄마가 커튼을 치고 있었다. 엄마는 내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잘 잤어? 오늘도 아침을 놓쳤나 보네.”
“응. 눈 잠깐 감았다 떴는데 또 밤이 왔어.”
나도 모르게 힘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엄마는 무언가에 집중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면 밖에 나가서 물어보는 건 어때? 아침과 밤을 모두 보는 애들한테 말이야.”
하지만 그건 엄마한테도 이미 여러 번 물어봤는걸.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켰다. 혹시 엄마도 아침이 뭔지 잘 모르는 건 아닐까. 그래서 알려주지 못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럼 내가 다녀와서 엄마에게도 알려줄게.”
내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나갈 때까지 엄마는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밤이 찾아 온 동네는 작은 바람소리도 귀에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우리 집은 동네 안에서도 아래에 있었다. 내가 자주 가는 놀이터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 한가운데였다. 집에서 놀이터까지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자동차들이 네 줄로 달릴 수 있는 큰길이었고, 내가 자주 이용하는 건 다른 골목길이었다. 그 골목길은 처음엔 평범한 골목길이지만 걷다 보면 공원과 합쳐졌다. 마치 놀이터에 도착하기 전 쉬어가는 비밀장소 같았다. 공원과 합쳐지는 그때를 나는 제일 좋아했다.
그런데 걸을 때마다 발밑에 무언가가 자꾸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집에서 급하게 나오다가 제대로 묶지 못해 끈이 밟히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계속 밟혀 끈이 더러워질 게 뻔했다. 나는 신발끈을 고쳐 묶기 위해 잠시 옆에 벤치에 앉았다.
“안녕.”
그때 누군가가 말을 거는 소리에 끈을 묶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노란 얼굴의 가로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밤마다 이 골목을 지나가는 걸 보았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네.”
가로등은 나보다 마른 몸에, 키도 한참 컸다. 내가 고개를 끝까지 뒤로 젖혀야 겨우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따뜻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가로등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올라설 건 벤치 하나 밖에 보이지 않았다. 끈을 다시 묶은 신발을 벗어두고 벤치 위로 올라섰다. 여전히 가로등이 훨씬 컸지만 이제 고개가 아프지 않았다.
“가로등아. 너는 아침에도 여기에 있어?”
“응. 나는 하루 종일 이곳에 서 있어.”
“그럼 아침을 본 적이 있겠네?”
가로등은 한참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리고 누가 들을까 무서운 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아침은 무서운 도둑이야. 내가 갖고 있는 이 노란색 빛 말이야. 아침이란 녀석이 올 때마다 모두 뺏어 가. 그래서 나와 내 친구들은 아침을 좋아하지 않아. 모든 가로등의 빛을 매일매일 훔쳐간다니 진짜 무섭지 않아?”
가로등은 말을 하면서 화를 감추지 못하고 깜박거렸다.
“너의 빛을 뺏어간단 말이야?”
“그럼. 우리 빛을 뺏어간 덕분에 아침은 아주 밝은 노란색이야. 사람들은 그게 아침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야. 그건 다 우리 것을 모은 것뿐이지.”
나는 가로등의 이야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빛을 도둑질하는 아침은 내가 그동안 상상했던 아침이 아니었다.
“얘기해 줘서 고마워.”
겨우 가로등과 인사를 마치고 다시 놀이터를 가던 길로 발을 옮겼다.
동네 중심가에 있는 놀이터는 빨간색과 노란색을 칠한 미끄럼틀이 하나와 그네 두 개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그네 중 하나는 높게 타려는 다른 친구들이 줄을 여러 번 감아놔 나는 탈 수 없었다. 발이 닿는 다른 그네에 주저앉았다. 처음으로 들은 아침에 관한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그런 아침을 보려고 졸음을 참았다니. 괜히 심술이 나 발끝으로 모래를 툭툭 걷어찼다.
“너도 뭐 먹을 거 찾는 거야? 백날 그렇게 모래를 파봤자 아무것도 안 나올걸.”
검은색 콧수염을 갖고 있는 길고양이가 지나가며 말했다. 콧수염 고양이는 내가 파놓은 구덩이 옆에서 자기 발을 핥았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의 콧수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봐?”
콧수염 고양이의 목소리는 톤이 높고 날카로워서 꼭 화를 내는 것처럼 들렸다. 무슨 말을 해도 혼날 것 같았지만 침을 꾹 삼키며 말했다.
“음식은 아니지만 찾는 건 있어.”
“그게 뭔데?”
“아침이야. 혹시 아침이 뭔지 알아?”
콧수염 고양이는 살랑살랑 흔들던 꼬리를 갑자기 바짝 세우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건 꼭 내 발 어딘가를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것 같은 위협적인 자세였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더니 타고 있는 그네가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움직였다.
“너 혹여나 아침을 볼 생각은 하지 마.”
콧수염 고양이는 내가 놀라는 걸 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몸을 단장하며 말했다. 목소리는 아주 단호했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그네를 더 꽉 잡았다.
“내 친구들이 아침에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갔다가 커다란 자동차에 부딪혔어. 그런 친구들은 아직도 끊이지 않아. 자동차뿐만이 아니야. 난 어렸을 때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어떤 사람에게 빗자루로 여러 번 맞았어. 이제는 절대 해가 지기 전엔 돌아다니지 않아.”
콧수염 고양이는 아무렇지 않은 눈으로 말했다. 나는 가로등이 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실망했지만 티 내지 않았다. 이럴 땐 어떤 말을 먼저 건네야 하는지 잘 몰랐다. 몸단장을 마친 콧수염 고양이는 내 말에 나를 한번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아침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걸 잊지 마. 그럼 안녕.”
콧수염 고양이는 느린 걸음으로 놀이터를 벗어났다. 나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제 아침에 대해 더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아침은 정말 내가 느낀 그대로 차갑고 뾰족했다. 놀이터에 오면 그네를 몇 번씩이고 탔는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현관문을 최대한 조용히 열었다. 지금 당장 엄마를 마주치면 아침에 대해 제대로 말해주어야 했다. 아직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조심히 신발을 벗고, 발뒤꿈치를 들어 방까지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방에 들어와 방문을 닫고 나서야 몸에 힘이 풀렸다. 창문 밖은 어느새 푸른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창문 앞을 지나가는 커다랗고 노란 달과 눈이 마주쳤다. 달은 전에 봤을 때 보다 몸이 더 통통해져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근데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
“오늘 아침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듣고 왔어.”
“아침이 무서운 거라고?”
달은 놀란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가로등과 콧수염 고양이에게서 들은 아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달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는 말했다.
“나도 아침이 뭔지 잘 몰라. 내가 아는 친구 중에 아침을 가장 잘 아는 건 내 뒤를 따라오는 태양일 거야. 나와 태양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 우리는 늘 서로 양보하거든. 태양에게 한 번 물어보는 건 어때?”
달은 말을 하면서도 어디론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어서, 말이 끝날 때쯤엔 이미 창문을 지나 옆집에 도착해 있었다. 태양에게 물어보면 아침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달의 뒤를 따라온다고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태양을 만날 수 있었다. 태양을 기다리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