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연 May 02. 2024

이번 역은 기역입니다.


5. 미완성


*십여년 전 쓴 미완성 대본. 당시 합평에서 '시나리오는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구석에 박아둔 hwp 파일을 꺼내보았습니다, 맞춤법 정도만 고쳐 올립니다. 정보 오류와 미숙한 점이 아주 많습니다.  






S#1 △△아파트 2단지 앞     


 △△아파트 2단지 주차장 앞에 1대의 구급차가 있다. 곧이어 경찰차 한 대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려와 205동 입구 앞에 선다. 경찰차 운전석에서 나온 경찰관 1은 빠르게 아파트 현관 앞에 노란색 폴리스 라인을 두른다. 아파트 앞은 동네 사람들과 기자들로 북적거린다. 그 무리에 구일태가 있다. 그때 경찰차 조수석에서 한 형사가 문을 열고 나온다.     


  구일태        (한 형사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어? 한 형사! 한 형사 잠깐만!      


한 형사는 소리를 못 듣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며 아파트 현관으로 걸어간다.  

   

  구일태        한 형사! (머리를 헝클이며) 아 진짜. 잠시만 길 좀 비켜주세요. (사람들 틈을 헤집고) 죄송합니다. 죄송한데 잠시만. 한 형사!

  한 형사       (뒤를 돌아보며 무심하게) 어, 왔어?

  구일태        내가 몇 번을 불렀는데 왜 못 들어. 한 형사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이번엔 뭐야? 

  한 형사       살인사건이야. 

  구일태        (한 형사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툭 치며) 그 정도는 알고 왔지.

  한 형사       (구겨진 어깨를 손으로 정리하며) 장난이 나오냐.

  구일태        연쇄살인이야? 그나저나 이 동네는 이상하게 익숙하단 말이야. 

  한 형사       (피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비벼 끈다) 너 취재부서 맞지? 

  구일태        그러니까 현장에 나와 있지. 뭔데 그래.

  한 형사       △△아파트 205동 1702호. 너희 부서 부장이 이번 살인사건의 피해자야.     


구일태는 멈칫하며 한 형사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본다. 한 형사는 구일태를 흘깃 본다. 그리고 노란색 폴리스 라인을 걷어 올리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S#2 달리는 차 안새벽      


사건현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 조수석에는 여러 노트와 수첩, 녹음기가 어지럽게 흩어져있다. 적막 속에서 구일태는 라디오를 켠다. 주파수는 106.1. 구일태는 얼굴을 한 번 찡그리고 빠르게 91.9로 돌린다.      


  구일태        언제 또 106.1로 돌려놨대. 같은 놈인데도 라디오 취향이 다를 수가 있나.  

   

구일태의 휴대폰에 전화가 온다. 발신자로 뜨는 한 형사 이름을 보고 핸즈프리를 연결한다. 

    

  구일태        뭐 새로운 거라도 있어?

  한 형사       (E) 너 말이야, 아까 그 △△아파트 단지 익숙하다고 했지?

  구일태        이상하게 그 동네가 익숙하더라고. 근데 왜?

  한 형사       (E)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너 아직 치료 중이었나?

  구일태        (당황하며) 야. 

  한 형사       (E)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보는 거야. 고등학교 때 생각도 나고. 

  구일태        (머뭇거리며) 이제 치료는 따로 안 받아. 기록이 남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들으니까 꺼려지더라고. 가끔 사소한 일이 일어나는 게 전부야. (라디오 주파수를 본다) 

  한 형사       (E) (한숨을 쉬며) 그렇구나. 알았어. 나중에 보자.

  구일태        그래, 들어가.     



S#3 △△아파트 2단지 내 ’ 초등학교 근처 공중전화박스 앞새벽     


공중전화박스 앞에 한 형사가 서 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다.     


  한 형사        (들고 있던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한숨을 쉰다) 



S#4 ○○신문사취재부서 사무실아침     


구일태가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시선을 돌려 부장의 자리를 보면 몇 송이의 하얀 국화꽃이 놓여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같은 부서의 박 기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박 기자       (조용히 속삭이며) 사이 안 좋았었죠? 부장님이랑. 

  구일태         모르는 사람 없을걸요. 

  박 기자       그나저나 다들 착잡한가 봐요. 기사는 나갈 건데, 당장 어제까지 얼굴 보고 회의하던 사람 일이니까. 일태 씨도 신입 때는 회식 끝나면 부장님 집에 모셔다 드리고 그랬잖아요. 

  구일태        (혼잣말로) 그래서 익숙했나. 아침에 새로 들어온 소식 있어요?

  박 기자       (질린다는 듯이)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일 얘기가 나와요?

  구일태        (덤덤하게) 그럼 회사 나와서 뭐 해요, 일해야지. 

  박 기자       어우, 됐고. 기사나 열심히 쓰세요.      


박 기자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고, 구일태는 다시 부장의 자리를 바라본다.      



S#5 회상△△아파트 2단지 앞새벽     


택시가 아파트 입구에 선다. 구일태는 택시 뒷좌석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부장을 부축하며 내린다. 


  구일태       (난처한 듯) 부장님 도착했어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어우, 왜 이렇게 무거워. 부장님! 도착했다니까요. 

   부장        (주위를 둘러보며) 어어, 벌써 도착했나? 여기가 어디야?

  구일태       부장님 댁 앞이요. 다 왔어요. 이제 올라가서 주무세요.

   부장         이거 구일태 기자 아닌가?

  구일태       (한숨을 쉬며) 네. 신입 구일태입니다. 부장님 어서 올라가서 쉬세요.

   부장       (손가락으로 일태를 가리키며) 내가 말이야.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별다른 수가 없었어. 같은 편집국끼리 사이 나빠지면 모두 힘들어진단 말이야. 그러니까! 하는 수 없이! 저번에 저쪽에 빚진 것도 있고. 이해, 해줄 수 있지? 

  구일태       (허공을 잠시 바라보다가) 네. 알겠습니다. 이제 들어가세요.      


부장이 비틀거리며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간다. 입구 센서가 꺼졌다가 켜지고를 반복한다. 몇 분 뒤 17층의 센서불이 켜진다. 구일태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다가 뒤돌아선다.      



S#6 ○○신문사 앞     


구일태가 착잡한 표정으로 신문사 건물 앞에서 음료수를 들고 서 있다. 그에게 다가가던 취재부서의 사진기자 이주승이 옆에 나란히 선다.     


  이주승       (어색하게 웃으며) 왜 그래, 얼굴이?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하더니.

  구일태       (한숨을 내쉬고 들고 있던 음료수를 마신다)

  이주승       설마 너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구일태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이주승이 그런 반응에 놀란 듯 구일태 앞으로 다가온다.     


  이주승       정신 차려. 살인을 저지른 놈은 따로 있는데 왜 네가 그러냐.

  구일태       (손을 내저으며)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여러 생각이 들어서 그래.

  이주승       자리 지키느라 신입이 잡아놓은 특종 기사 팔아먹은 놈인 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

  구일태       (헛웃음 소리와 함께) 다 옛날 일이지.

  이주승       (기가 찬다는 듯이) 너 그때부터 사건만 터지면 튀어 나갔던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오죽하면 정치부가 지레 겁먹었을까. 사회부 기자가 먼저 취재할지도 모른다고. 너 그 정도였어. 

  구일태        ...

  이주승       (다독이듯)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가자, 점심 먹으러. 

  구일태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밥부터 먹자.     



S#7 서울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저녁     


사무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여있는 서류들이 보인다. 한 형사는 그 서류를 살펴보다가 이마에 손을 얹고 몸을 젖힌다. 한 형사의 옆자리에는 같은 형사계인 김 형사가 앉아있다.      


  한 형사       (혼잣말로) △△아파트 205동은 계단식 아파트. 피해자가 살해당한 곳은 자택 안. 마침 피해자의 가족들은 제사로 통영에 내려간 상황…

  김 형사       (궁금한 듯이) 그런데 한 형사님.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자살일 수도 있고, 직업상 과로사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표면적인 사망원인도 당뇨병과 말초신경장애로 인한 뇌졸중이니까 피해자가 당뇨병을 앓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살인이 아닐 수도…

  한 형사       (중간에 말을 끊어내며) 피해자는 퇴근 후 가족들을 따라 통영으로 내려가려고 사망 하루 전날 아침 10시 28분경에 동서울터미널 발 저녁 9시 10분 버스를 예매해 둔 상황이었어. (서류 더미 사이에서 하늘색 파일을 꺼내어 펼치며 손가락으로 해당 부분을 짚는다) 부검 결과 사망 시각은 저녁 8시 7분. △△아파트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막 출발할 즈음이야. 맞은편 1701호의 젊은 부부는 저녁 7시부터 밤 10시경까지 외식 중이라 집을 비워둔 상태였고, 자택에 혼자 있는 사람이 죽었다고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통영에 먼저 내려간 가족들이 피해자와 연락이 안 된다는 실종 신고를 한 건 사건 신고 전화보다 다섯 시간가량 늦은 시간이었어. 그 시간까지 도착한 택배는 없었고, 배달원도 없었다. (서류를 소리 나게 덮으며 김 형사를 바라본다) 자, 그럼 사건 신고를 한 건 누구겠어.

  김 형사        (경악하며) 그게 설마 범인이겠,

  한 형사        (다시 말을 자르며) 신고 전화가 온 위치를 조사해 봤는데 아파트 단지 내 공중전화였어. 사건은 자택에서 일어났는데 공중전화로 신고가 온 거야. 이상한 점을 느끼고 찾아갔을 때는 이미 늦었지. 공중전화 근처나 자택 안에 지문이나 발자국 같은 증거는 철저하게 감춘 상태였고. 

  김 형사        붙잡히려고 환장한 놈이 아닌 이상, 범인이 신고 전화를 할 리가 없잖아요.

  한 형사        모르지 그건. 애초에 정신 멀쩡한 놈이 살인을 저지르겠냐.

  김 형사        아니, 근데 피해자는 아무런 상처 없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면서요.

  한 형사        말초신경장애는 약물중독으로도 가능해. 팔에 주삿바늘 자국이 있더라고. 당뇨병 환자였으니 인슐린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았겠지만, 약물 투여 주사를 맞았을 수도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 그런데 문제는 가능성만 고려해야 한다는 거지.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까. 

  김 형사        만약 약물로 인한 살해라면, 범인은 피해자가 혼자 남을 상황에 시간까지 고려해서 약물을 투입해 왔을까요?

  한 형사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일단은 오랜 기간 약물을 투입해도 피해자가 모를 정도면 꽤나 믿을 수 있는 사이일 거야. 

  김 형사        (한숨을 내쉬며) 결국 유일하게 추측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네요.        

   


S#8 구일태의 집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구일태. 목에 있던 넥타이를 풀어 내리며 거실의 불을 켠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 오른편에서 물을 꺼내어 마시는데 반찬통이 놓여있는 자리 사이에 어린이 성장용 포도 맛 음료가 눈에 들어온다.     


  구일태        (어린이용 음료수를 집어 들며, 어이가 없다는 듯) 이제 가지가지하는구나.     

 

음료는 2/3 정도 남아 있다. 구일태는 어린이용 음료수를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는다. 마시던 물통도 다시 제자리에 넣고 문을 닫는다.      


  구일태        지 입맛이 부끄러운 줄은 아나 보지.      


구일태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는다. 조용한 거실. 한 형사가 통화에서 했던 음성이 나온다.   

  

  한 형사       (E) …너 아직 치료 중이었나?


그리고 한창 치료를 받았던 때 의사의 음성이 나온다.     


    의사        (E) 해리성 정체장애는 완벽하게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장이 술에 취해 말한 음성이 나온다.     


    부장        (E) 이해, 해줄 수 있지?      

  구일태      (소파에 드러누워 눈을 감으며) 내가 나를 이해 못 하겠는데 누구를 이해해.



S#9 ○○신문사취재부서 사무실아침     


구일태가 사무실 자리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그때 울리는 휴대폰 진동 소리. 구일태는 기사 작성에 정신이 없어 진동소리를 못 들은 듯 타자만 치고 있다.     


  박 기자        (구일태의 책상을 톡톡 치면서) 구일태 씨. 전화 왔어요. 

   구일태        (소리를 듣지 못한 듯 타자만 친다)...

  박 기자        (일태의 팔을 잡아 흔들며) 구일태 씨! 전화 왔다니까요.    

 

그제야 구일태가 박 기자를 쳐다보고, 박 기자가 진동이 울리는 구일태의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제야 전화를 받는다.     


  구일태        네, 구일태입니다.

 한 형사        (E) 나야. 낮에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어?

  구일태        안 그래도 사건 기사 쓰고 있어서 연락하려고 했는데. 어디서 볼래?



S#10 ○○신문사 근처 카페     


한 형사가 카페 안 쪽에 위치한 테라스에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서류가 놓여있다. 잠시 후 구일태가 카페에 들어와 고개를 돌리며 한 형사를 찾는다. 한 형사는 손을 흔들고, 그걸 본 구일태가 자리로 다가온다. 한 손엔 노트북이 들려있다.     


 한 형사        갑작스럽게 미안하다.

  구일태        외근 기자가 사무실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이상하지. 괜찮아.

 한 형사        사건 기사는 마무리되어 가?

  구일태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내리며) 사건 맡은 형사랑 바로 연락이 되는데 뭐. 일단 보내 준 정보로 완성 중이야.

 한 형사        안 그래도 그 정보 때문에 만나자고 했다.

  구일태        (노트북을 켜며) 추가된 정보가 있는 거야? 어디를 수정해야 하는데?

 한 형사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 목격자가 나왔어. 

  구일태        지속적인 약물 투여를 통한 살해라고 추측한다며? 그걸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한 형사        약물 투여하는 현장은 목격할 수가 없지. 우리가 생각하는 범인은 그렇게 허술한 놈이 아니니까. 약물에 의한 살해인가도 긴가민가했었고. 어쨌든 이 목격자는 약물에 대한 목격자야.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서류 하나를 펼치며) 어젯밤에 연락이 왔어. △△아파트 6단지 후문 앞에 있는 슈퍼 주인이야. 6개월 전부터 어떤 남자가 와서 음료를 매일매일 사 갔대. 그것도 어린이용 음료를. 아주 어린 자식이 있을 법한 나이로 보여서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은 그 음료가 입고가 안 돼서 없었나 봐.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음료를 찾은 거지. 주인은 오늘 업체 사정 때문에 입고가 안 됐다고 토마토 주스라도 사 가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래. 왜 안 되냐고 물어보니 ‘나트륨이 없는 이온 음료가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더라.

  구일태        (의아한 듯이) 나트륨이 몸에 나쁜 건 맞잖아. 아기 먹일 거면 더더욱 없는 쪽이 낫겠지.

 한 형사       그래서 주인도 ‘아기 먹인다고 꼼꼼하게 확인하나 보네’라고 했는데, 아이가 없다는 거야. 그럼 누가 먹을 거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웃으면서 나갔대. 이 주인은 이상하다고 느꼈다는 거지. 여기까지는 이걸 증언이라고 하나 싶었는데…

  구일태        그런데?

  한 형사      (서류를 한 장 넘기며) 그 슈퍼 주인이 평소에 당뇨 증상이 있었던 사람이었어. 그래서 2주 전에 병원 가서 진료를 받다가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거야. 당뇨병 환자가 말초신경장애까지 겹치면 사망률이 높아지는데 그 말초신경장애라는 게 나트륨이 부족해지면 나타나는 간질액 부족과 연관이 있다는 거지.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 남자가 생각나더래. (다른 서류를 펼치며) 나트륨이 없고 체내에 흡수가 잘 되는 이온 음료. 아이가 먹을 게 아니라는 어린이용 음료. 그리고 1주일 후 그 동네에 당뇨병과 말초신경장애의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 그 사망자가 약물로 살해당했다는 소문까지 듣고 이 주인이 그 어린이용 음료에 사망원인이 되는 약물을 섞었을 거라고 확신을 한 모양이야. 

  구일태        (고개를 갸웃하며) 그걸로 충분한 거야?     

한 형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구일태 쪽으로 걸어간다. 멍하니 그런 한 형사를 보고 있는 구일태. 한 형사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순식간에 구일태의 손목에 채워지는 수갑.     

  구일태        (당황하며, 화난 목소리로) 뭐 하는 거야? 왜 이래, 갑자기?

 한 형사      (무덤덤하게) 2012년 10월 말부터 2013년 3월 23일까지 슈퍼 안에 있던 CCTV 기록을 확인했어. 하루를 제외한 나머지 날짜엔 범인이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 딱 하루엔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지. 범인의 이목구비를 보자마자 딱 한 사람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구일태        (크게 소리치며) 그게 나라고? 내가 아무리 부장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했지만 이건 아니잖아!      


구일태가 큰 반항 없이 눈을 부릅뜨고 한 형사를 쳐다본다. 그런 구일태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구일태의 손목에 감겨있던 수갑을 열쇠로 풀어낸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한 형사       (펼쳐놓은 서류철을 정리하며) 장난이야, 임마. 사실 이목구비도 확인을 제대로 할 수 없었어. CCTV 자체가 너무 오래돼서 뭘 제대로 분간할 수 없더라.

  구일태        (수갑으로 헝클어진 소매를 정리하며,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장난? 난 내가 잠깐 잠든 사이에 또 다른 내가 무슨 일을 벌일까 봐 잠도 제대로 못 자. 정신을 놓으면 또 빠져나올까 봐 늘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어. 전화 온 진동 소리도 못 들을 정도라고.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일단 쉬는 게 좋겠다. 먼저 일어난다.          



  

이전 04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