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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May 16. 2024

이번 역은 기역입니다.


7. 수채화







4월부터 미술 학원을 다니며 그린 그림들.



  글 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 있다. 음악 쪽은 말할 것도 없이 <케이팝 스타>, <슈퍼스타 K> 등 오래전부터 많았고, 미술 쪽에서는 <아트 스타 서바이벌>이 유명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유리 아트 관련하여 프로그램도 제작한다고 들었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이 작품, 실력보다 참가자들의 관계성에 집중하고 악의적인 편집을 하여 비판도 받지만, 어쨌거나 매체에서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알릴 좋은 기회인 건 사실이다.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문학 버전 쇼미더머니를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주제가 나오면 프리스타일로 몇 자 이내 글을 작성하여 배틀을 하고, 실시간 채팅이나 문자투표로 인기 순위를 정해도 좋고, 다양한 분야에서 심사위원이 나와 참가자들과 팀을 이루어 멘토가 되어주면 어떨까. 인기를 끈다면 베스트셀러 순위가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그건 그것대로 또 재밌겠다 싶었다.


  난 그때도 신춘문예와 출판사 등단에 목을 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때였다. 글을 접할 방식과 기회가 많아진다면 창작자가 자신의 글을 보여줄 기회도 많아지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내가 등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한다면 '등단하지 못해서 저렇다.'는 비판을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여전히 등단의 꿈을 놓지 못한다.


  창작자들이 작품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개인 소셜 네트워크나 블로그, 홈페이지를 찾아다니며 여러 작품을 찾아 즐기는 사람도 늘었다. 앞으로 AI가 발달하면서 창작자와 감상자 중간에서 제작, 유통, 전달을 하는 단계가 사라질 거란 예측을 들었다. 개인이 창작자이자 전달자가 되어 소비자에게 직접 작품을 보여주게 된다고. 이제부터 나도 주체적으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최종 목표는 꼭 책을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시와 소설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각적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퇴사를 하고 나서야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울 여유가 생겼다. 동네 십 분 거리에 있는 한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다. 오늘 저녁 수업을 가면 두 번째 달이 된다. 처음엔 연필 스케치와 명 주는 방법을 배웠고, 그다음엔 색연필로 색깔을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수채화를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다.


  입시생들과 초등학생들 사이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두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글만 써온 나에게 그림이 주는 느낌은 새롭다. 연필로 스케치를 하거나 색칠할 때 몰입되는 기분이 좋다. 글 쓸 때는 계속 한숨을 쉬고, 먼 산을 보고, 머리가 아프다가 시간 동안 문장 써놓고 이걸 글이라고 썼나 싶어 전체 삭제를 한 다음 자괴감에 시달린다. 그림은 전공자가 아니어서, 애초에 고통스럽게 만들 기본 지식도 경험도 없어서 마냥 즐겁다. 내가 고른 색으로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그때그때 눈에 보여서 신기하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들어야 한다면 또 다르겠지만.


  이달 말이면 스튜디오 빈칸(트라아트)에서 진행하는 글 전시를 위해 작품 설치를 하러 간다. 이번 작업이 아마 글을 시각화하는 나의 첫 실행적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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