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연 May 31. 2024

이번 역은 기역입니다.


9. 전시






  우리 집은 전보다 서울과 멀어졌다. 두 시간 이내로 서울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대중교통을 타기 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전시관을 전처럼 자주 가지 못했다. 종로, 서초, 성수 등 전시가 열리는 지역에 가려면 ‘큰 마음’이 필요했다.


  Y 언니는 가까운 동네에 살았다. 십여 년 전엔 같은 동네였고,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조금 멀어졌다가 둘 다 번갈아 이사를 하게 되면서 지금은 옆동네가 되었다. 언니는 오래전부터 글과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된 계기도 글이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게 어려워 인연을 잘 이어가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언니와는 꾸준한 사이가 되었다. 스스럼없이 나를 챙겨주는 언니의 마음에 나 역시 편해졌다. 아주 힘들어서 부모님이 아닌 어른이 필요했을 때도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무슨 용기로 먼저 연락을 했는지 몰라도 언니는 자기 일처럼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덕분에 숨을 돌렸다.


  전시를 보러 가자고 말하는 사람은 주로 언니였다. 비슷한 시기에 둘 다 퇴사를 하면서 시간이 맞아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거의 삼 년 만이었다. 4호선과 경의중앙선으로 연결된 이촌역은 좀처럼 발길이 가지 않았다. 평일 아침, 한적한 박물관에서 언니와 만났다.


  어제 처음으로 전시해설을 들었다. 누군가의 설명을 듣기보다 혼자 가서 소개글을 읽거나 아예 작품만 보는 편이었다. 서화관의 해설을 맡아주신 선생님은 곧 여든이라고 하셨다. 해설을 듣는 사람은 나와 언니뿐이었고, 우리는 서화관을 바삐 걸으며 그림을 만났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대표 전시 해설을 들었다. 벽화부터 시작해 사방신과 오방색의 유래를 듣고, 불교 미술과 달항아리까지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메모 어플을 누르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를 옮겨 적었다. 아주 사소한 내용이었다. 온도 1도를 올리기가 사실은 아주 어렵다는 것과 고대 사람들은 모든 생명이 바다로부터 왔다고 믿었다는 이야기와 툰드라 지역과 순록, 여백이 지닌 의미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의미를 담기보다 감정을 담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반성했고,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려면 더 깊은 사유와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나 자신에 매몰되어 놓쳤던 마음을 정리했다.


  


   


  

  


빈칸 글 전시에 참여하게 되어, 소식 전달 드립니다.

(https://bincan.co/geul5-ap)


<다섯 번째 글, 낮과 밤> 전시 안내


낮과 밤으로 정의할 수 없는, 시와 때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작가의 이야기를 공간에 담습니다. 흘려 쓴 모든 글들을 전시하고 관람객은 흐르듯 글을 읽습니다.



1. 전시 일시 : 2024년 6월 4일 ~ 30일 (4주)

- 일요일, 국가지정 공휴일 휴관

2. 관람 시간 : 오전 11시 ~ 오후 7시

3. 전시 장소 : 빈칸 압구정 (서울 강남구 언주로 165길 13 1층, 지하 1층)

 



이전 08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