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기역입니다.
글을 쓰려고 등 뒤에 있는 침대를 본다.
베개 다섯 개와 이불 세 장이 뒤엉켜있다. 혼자 자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이불장이 없어 그대로 펼쳐두었다. 이불이 많으니 밤마다 원하는 걸로 골라 덮을 수 있다. 더운 날엔 얇은 시어커서 이불 한 장만 덮고, 무게감을 느끼고 싶을 땐 이불 세 장을 다 덮고 잔다. 하나는 그가 가지고 온 이불이다. 내 실수로 부욱 찢어져 그가 천을 덧대고 바느질을 했다. 그만 버리자고 했지만 나는 꾸역꾸역 넝마가 된 이불을 갖고 있다. 노란색과 남색과 청어 무늬와 곰돌이. 내 이불과 베개 위에 그려진 색과 모양은 얼룩덜룩해서 재료를 잘 못 쓴 그림 같은데, 나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에 익숙해졌다.
원룸에 살면 침실이 곧 집이 된다. 현관에서 다섯 발자국만 걸으면 침대에 도착한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을 때 가장 바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왜 그랬지?, 뭐 쓰지?, 뭐 먹지?―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보고, 통화를 하고, 구상도 하고, 할 일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잠을 자는 곳 이상이 되어버렸다.
다음 글은 압구정 빈칸에 전시한 글이다. 침대에 누워서 생각한, 잠과 밤에 관한 이야기이다.
― 베개를 새로 사야겠어.
네가 말했다. 위아래로 양치질하던 손을 멈추었다. 거울 속으로 비친 너는 내 눈을 피했다. 다시 윗니 닦기에 집중했다. 왼쪽 위에 난 사랑니 하나가 약 올리듯 머리만 삐죽 내민 채 성장을 멈췄다. 손거울로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보아도 끄트머리만 겨우 보였다. 꽉 찬 자리를 비집고 나왔으면 끝까지 자라기라도 하지. 없느니만 못한, 있어도 쓸모없는. 세면대에 양칫물을 뱉고 칫솔을 흐르는 물로 헹구었다.
또 베개가 문제였다. 베개를 향한 너의 집착은 갈수록 고약해졌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베개를 바꾸었다. 가운데가 움푹 꺼진 경추 베개를 쓰다가 인테리어 쇼핑몰에서 파는 솜 베개를 샀고 또 버렸다. 건전지처럼 생긴 타원형 베개를 본가에서 가져오기도 했다. 진도에 있는 국립 휴양림에 갔을 땐 어땠더라. 기분 전환을 이유로 연차까지 쓰며 다녀오는 길이었고, 서울로 나가는 고속도로로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한 노점상을 들렀다. 편백나무로 만든 잡화를 팔고 있었는데, 너는 그중에서도 편백나무 큐브로 속을 채운 베개를 집어 들었다. 여름밤 내내 머리맡에서 나던 진한 나무 냄새는 머리카락과 피부에도 징그럽게 달라붙었다.
― 이번엔 뭐가 문제인데?
욕실을 나오면서 물었다. 너는 부엌 선반에서 컵을 꺼냈고,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냈다. 내가 채운 물을 한 모금 마신 너는 곧 약봉지를 뜯었다. 몇 년 전부터 처방약의 도움 없이는 평범하게 잠들지 못했다.
나라면 알약을 우선 입에 넣고 물로 쉽게 넘겼을 텐데. 나라면 베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불면의 원인을 찾아 바꾸었을 텐데. 나라면 비싼 돈 주고 잠을 사는 짓은 안 할 텐데. 너는 지나치게 사소해서 마음먹기 편한 일을 크게 부풀려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 밥을 먹는 일이나 매일 저녁 한강 공원을 걷는 것, 나이 든 사람의 영양가 없는 충고를 한 귀로 흘리는 마음가짐 같은 것들.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결심을 너는 대단한 사건 마냥 어려워했다.
― 아니면 베개를 얼굴 위로 덮고 잘까. 몸이 자꾸 떠다녀.
― 현실은 공상과학소설이 아니야.
그렇게 대답하면서 네가 마신 물이 방울이 되어 무중력 상태가 된 거실을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 같을 때가 있었다. 땅을 밟고 있는 두 발을 눈으로 몇 차례 확인했다. 그럼에도 내 몸의 구체적인 형태가 무엇인지 아득했다. ‘만약에’로 시작하는 어떤 이야기처럼 하루아침에 현재에서 아주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적당한 불안은 괜찮은 성과를 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던데, 내 불안은 매번 권태로웠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들은 하나 같이 지독한 습성이 있었다. 머리를 제멋대로 쥐고 세게 흔들었다. 떼어내려 해도 형체가 없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두통을 앓다 보면 여전히 내가 세상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을 부추기고 내일을 상기시켰다.
― 그렇지만 너무 가벼우니까 잘 수 없는 걸.
사람들이 어두울 때 잠을 자는 이유는 밤이 무거워서라고 생각한 적 있다.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살면 그렇게 된다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을 나서고, 직장에서 그날의 성과를 내다가 일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 삶. 그런 시간이 몸에 쌓이고 편백나무 향처럼 무겁게 달라붙어서 눈이 감기는 거라고 믿었다.
우리의 밤은 자꾸 휘발되어서 날아갔다. 매일 종이와 물감과 전기를 낭비하면서 어제로 넘어갔다.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한 글과 그림은 어떤 면에서 시간과 비슷했다. 오늘도 어제로 이름이 바뀌고, 내일은 오늘이 되어 ‘언젠가 그랬던’으로 사라졌다. 내가 생산한 것은 분명 있었다가도 없어지고 끝내 잊혔다. 너의 잠처럼, 나의 사랑니처럼, 거울 속 너처럼, 매일 두 번씩 머리를 감는 나처럼, 베개를 새로 주문하는 너처럼, 컵에 물을 채우는 나처럼, 약을 삼키는 너처럼, 사실은 나인, 너처럼.
― 오늘 밤은 다를 거야.
나는 너를 위로하고, 너는 내게 사라지면 안 된다고 다그쳤다. 그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너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네가 되어서, 결국 자신이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