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기역입니다.
계획보다는 루틴이 어울리겠다.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히 이루어지는 일이니까. 나에게 루틴이라고 말할 일상이 생긴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도 스물아홉 살, 그때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이십 대에는 해야 하는 일이 절반, 충동적으로 하는 일이 절반이었다. 나는 보기보다 성실한 편이어서 과제를 기한 넘겨 제출한 적이 없었다.(우리 과에서는 마감 못 맞추는 경우가 의외로 흔했다.) 아르바이트도 제시간에 출퇴근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완성한 과제나 모은 돈을 충동적으로 쓰거나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내일 뭐 하냐고 주변 사람들이 물어보면 아무 일 없다고 답했다. 정해진 하루가 없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술 약속을 잡았다. 지하철 역에서 구토를 할 때까지 마셔도 걱정이 없었다. 다음 날 학교를 가지 않으면 그만이라서.
이 시기의 나는 가끔 달력을 보며 울었다. 서른 개의 날짜 속에 내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루틴'이 사람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는 걸 몰랐다. 주변엔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 사람들이 많았다. 직업이나 수입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다들 그랬다. 어쩌면 부모님까지도. 언제일지 모르는 그날을 위해 각자의 생각과 사건과 감정을 갈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비슷한 덩어리끼리 모여 주고받는 대화는 언젠가 될 거라는 덧없는 확신과 불안이었다. 이상하게 공허를 공유할수록 나는 더 공허해졌다.
서른세 살이 된 지금, 누워서 한 사람을 생각한다. 매일 일찍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아침 메뉴는 파스타이거나 토스트이거나 볶음밥이다. 출근을 하면 요일마다 정해진 사람과 점심을 먹는다. 혼자 먹는 날엔 맥도널드를 가거나 포케를 먹는다. 회식이나 약속이 없으면 퇴근 후 수영을 한다. 수영 수업이 없으면 기타를 연습한다.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자정이 되기 전에 잠든다. 나를 알기 전엔 일요일마다 코인 노래방에 가던 사람, 매주 평일 저녁으로 김밥만 먹던 사람, 공원을 뛰고 철봉을 하던 사람.
나는 그처럼 되고 싶었다. 닮고 싶은 인간상이었다. 사실 기저에는 조금이라도 비슷해져야 그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를 만나며 나에게도 하루가 생겼다. 그를 따라 철봉 매달리기에 욕심을 내보기도 했고, 매일 새로운 걸 배우는 그를 따라 자격증 공부를 했다. 술도 끊었다. 운전을 배웠고, 중고차를 샀다. 치실을 쓸 줄 알게 되었고, 최대한 규칙적으로 운동을 간다. 미술학원도 가고, 목요일마다 글을 쓴다. 먹지 않던 아침을 챙겨 먹는다. 어렵지만 자정이 되기 전에 자려고 한다. 몸 어딘가 문제가 생기면 놔두지 않고 병원에 간다. 토요일마다 산책을 하고, 일요일 아침엔 주로 햄버거를 주문해 먹는다.
그렇게 모인 습관과 하루가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힌트를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 하고 싶은 일이 많아져서, 더 이상 어린이대공원에 앉아서 혼자 울거나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하염없이 걷지 않는다.
루틴이 있고, 하루가 채워진다. 그 하루가 마침내 내가 되어서 나는 내가 몰랐던 나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