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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Apr 11. 2024

이번 역은 기역입니다.


2. 난




  그날은 토요일 밤이었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시사 다큐를 보는 중이었다.


  특별한 외출이 없으면 밤 열한 시가 되자마자 해당 방송 채널을 틀었다. 사람이 사람을 잃어버리고, 사람이 사람을 원하고 미워하다 결국엔 살해하고, 낱장 서류에 쓴 서명을 이용해 돈을 얻고 친구를 버리는 이야기 등을 주로 다루었다. 아늑한 방과 어울리지 않게 내용은 무겁고 시끄러웠는데, 그와 달리 나는 끝까지 못 보고 잠들 때가 많았다. 


  이번 사건의 배경은 한 작은 마을의 야산이었다. 가방과 보자기에 싸인 누군가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유골의 이름도, 범인의 존재도 무엇 하나 특정된 것이 없었다. 제작진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이어갔다. 야산에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이 지역에 익숙한 사람일까, 아니면 타지에서 처음 온 사람일까. 가능한 모든 범위에서 범인을 찾던 제작진은 오래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 위기를 겪고 있을 당시 난을 캐려고 방문하는 타지 사람이 많았다는 것.


  난은 왜 비쌀까?


  나는 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외환 위기 시절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던 나는, 그때의 절박함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저 궁금했다. 작은 식물이 얼마나 값이 된다고 사람들은 외지의 산에 올라 난을 캤을까.  


  인터넷에서 이유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난의 종류가 많지 않아 외국에서 들여오는 데 비용이 든다고 했다. 또, 난은 키우기가 까다로운 식물이라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답도 있었다. 

  

  장면 하나를 상상해 보았다. 바람에 날려 이름 모를 땅에 자리한 씨앗 하나가 계절에 맞춰 싹과 꽃을 피웠더니 가격표가 달리는. 만약 인간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이름도, 가치도 비어진 채로 살았을까. 한 조각 부족한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인간이 정한 가격에 인간이 아등바등 매달리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제 힘으로 자란 풀에 관계없는 사람들이 가치를 정한 가장 처음 그날은 과연 언제일까.





  인터넷에서 요즘 들어 글이 쉽게 쓰이고, 아무나 책을 낸다는 의견을 보았다. 특히 에세이 분야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정 에세이 책의 제목과 나무가 아깝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며 조금 화가 났다. 나는 우울증을 겪으며 닥치는 대로 우울과 관련한 책을 읽었다. <한낮의 우울>부터 <슬픔의 위안>, 그리고 비판받은 그 책도. 퇴사와 미래 계획을 세우며 자기 계발서도 많이 읽었다. 누군가는 에세이와 자기 계발서가 쉽게 쓰였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글이 있어 표현하기 어렵던 마음을 이해하고 방향을 정했다. 

     

  글이 난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소리를 대신해 활자로 남겼을 뿐인데 사람들이 마음대로 가치를 매기고, 아등바등 매달리는 것이. 


  그날 밤엔 아주 오랜만에 방송을 끝까지 보았다. 항상 내가 먼저 잠이 들고, 그가 뒷정리를 하곤 했는데 그날은 내가 모니터 전원을 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머릿속 한편에 '난이 비싼 까닭'을 집어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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