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 묵상 06화

유익했던 오죽헌 방문기

by 제이와이

서울에서 KTX를 타고 편하게 강릉을 갔다. 그리고 버스를 2번 갈아타고 오죽헌에 갔다.

신사임당과 율곡이이에 대해 학창 시절 공부한 기억은 있지만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커서 오죽헌 방문을 통해 알게 된 정보들은 꽤 놀랍고 신선했다.


가장 먼저는 율곡이이가 13살을 시작을 시작으로 장원급제를 무려 9번이나 한 영재였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자녀들은 모두 학식이 뛰어났다.

신사임당의 부모님도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 시대에 '딸'인 자녀에 대해서도 교육적인 지지를 해주시는 분이셨다. 그 시대에 보기 어려운 '지혜'가 있으셨던 것 같다.

어떤 그룹 앞에서 역사적인 내용들을 해설하고 있는 가이드 근처에서 설명을 조금 같이 들었는데 바로 옆 동네에 있는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의 결혼 후 삶을 비교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


<신사임당>

- 그 시대에는 남자가 아내의 집에 '장가가는'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신사임당은 19세에 결혼해서 38살까지 친정부모와 함께 살았다. 마음 편히 지내면서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하아ㅔ 그림과 글공부를 계속해나가며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신사임당의 부모님은 지나치게 잘난 집안의 아들을 사위 삼길 원치 않았다. 자녀가 재능을 펼치는데 제약이 될 수도 있기에.


<허난설헌>

- 허난설헌은 여느 시집간 여성들처럼 '시집을 갔다'. 시댁에서는 여자가 글 쓰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시댁과 부딪힘이 많았다고 한다. 허난설헌은 27세에 요절했는데 그 이유가 산후우울증이라 한다.

두 자녀를 낳았으나 모두 병으로 잃고, 셋째를 가진 후에는 유산을 경험했다. 아마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억눌린 환경에서의 스트레스도 컸지 않았을까. 수많은 시와 글을 썼음에도 죽기 전에 동생 허균에게 다 불태워버리라고 했으니, 그 마음에 얼마나 많은 한이 맺혀있었을까.


가이드는 설명 듣는 무리를 둘러보며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두 사람이 마음 맞아 사는 것이 중요하니 부모 되신 분들은 이 이야기를 반면교사 삼아 자녀에게 의사, 부자 등 겉으로 보이는 기준으로 결혼하길 강요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며, 부모님들이 오늘 교훈을 잘 배워가시길 바란다고 하셨다.


강릉에 여러 곳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오죽헌을 방문한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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