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워킹홀리데이 in 시드니 - ③일자리

by 제이와이

시드니에 온 지 1개월 차, 어학원 강의에 불만이 쌓여갈 때쯤부터 이력서를 작성해서 온라인에 올라온 파트타임 스텝 공고에 하나둘 씩 넣기 시작했다.

난생처음으로 이력서라는 걸 작성해 보았는데 그 이력서가 하필이면 또 영문 이력서다.

내가 작성한 이력서는 정말 하찮고 보잘것없는 이력서였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나는 이전까지 한국에서도 아르바이트 경험이 전무했다.


시드니에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워킹홀리데이비자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기에, 일상생활영어조차도 겨우 가능한 나는 경쟁력이 없었다. 가게 내에서 사용하는 말이나 , 고객 대응에 필요한 표현, 단어들은 모두 생소하여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겠구나 생각했지만,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생계를 위해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은 게 아니라 알바도 '영어연습'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100군데를 넣을 각오를 하고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보잘것없는 이력서와, 영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티가 팍팍 나는 동양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오너는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한 60군데는 넘게 지원했을 때였을 것이다.) 호주 유명 초콜릿 카페 브랜드인 Max Brenner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면접 날까지 예상질문과 답변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계속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았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질문에 답변을 잘 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는 나에게 카페 메뉴 책자를 주고, 다음 면접까지 내용을 다 숙지해 오라고 했다. 일반 1인 오너가 운영하는 소박한 가게의 알바도 아니고, Max Brenner라니! 하며, 나에게는 그 기회가 마치 호주의 대기업 취업 자리라도 얻은 양 놀랍고 기뻤기에 어떻게든 알바자리를 따내야겠다는 열의가 타올랐다. 어학원 기간이 2개월 남았지만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걸 drop 할 생각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Max Brenner의 면접 안내 연락을 받은 바로 그다음 날 Upper-intermediate 반으로 올라가면서 Brad의 수업을 수강하고, 그 뒤로도 수업을 2번 더 참여하면서, 수업이 내게 가져다주는 유익이 너무 커 drop을 망설이게 되었다. 수업을 2개월 drop 하면 패키지 프로그램에서 선지불 했던 돈을 그냥 날리는 격이기도 했다. 망설임 끝에 '영어실력 향상'이 1st 우선순위이기에 2개월 간 수업에 집중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Max Brenner에는 개인 사정이 생겨 다음 면접은 보지 않겠다고 전달했다.


그렇게 어학원에서의 2개월 수업이 끝나가는 중에 이력서를 계속 넣었지만 어디에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내 이력서는 점점 업그레이드가 되어 고작 레스토랑, 카페 알바 자리를 뽑는데 커버레터까지 정성 들여 작성해 제출하고, 없는 허위 경력(한국에서 카페 웨이트리스로 2~3군데 일해본 양)까지 넣어가며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100통까지 넣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방식을 더 업그레이드해 보자'라는 생각에 가게를 직접 방문해서 사람 필요하면 연락 달라며 이력서를 직접 제출했다. 극 내향인인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만큼 절박했다.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이력서를 받지 않고 거부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중 일본인 친구로부터 오피스 섹터 쪽에 큰 초밥 레스토랑이 오픈예정인데 오픈 전 아르바이트생들을 뽑아 트레이닝을 하려고 한다면서 사람을 많이 뽑는다고 하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규모가 큰 고급 레스토랑에,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그 당시로는 굉장히 선진문물인 터치스크린 패드를 들고 다니며 주문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 트레이닝에 참여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메뉴를 외워야 했다. 이름도 익숙지 않은 일본 음식 150여 종과, 주문 접수 방식 등 외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는데 3일 동안 외워둬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 시도해 봤지만 사진과 일본어+영어를 같이 매칭하려니 일본인 친구들보다 외우는 속도가 너무 느려 도저히 3일은 불가능했다. 거기다 시급도 낮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발품 팔면서 잡은 다음 알바는 중국인이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였다. 5일은 trial 기간이라 시급이 없다고 했는데, 첫날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홀에 나가 주문을 받고, 캐셔까지 담당해야 했다. 중국인 부부는 하는 일이 없었고, 거기서 일을 하는 직원은 중국인 부부의 자녀 1명이 조금씩 거들고 있을 뿐이었다. 포지션이 정해지지 않고 그냥 싼 값에 사람을 오지게 부려먹으려고 하는구나가 너무 적나라하게 눈에 보여 하루 공짜로 일해주고 알바 안 하겠다고 하고 그만두었다.


세 번째는, 공항 푸드코트에서 일본식 마끼롤을 파는 부스를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매니저부터 직원이 모두 한국인이었다. 총 5명 정도 되었는데,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아르바이트생이 일요일 근무를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들은 교회에 가야 한다며... 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이건 뭘까 싶었다. 거기다가 아침 6시에 시작하는 근무여서 5시에는 기차를 타고 공항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급은 당연 호주의 공식 최저시급보다 더 낮은 시급.

하루 trial 하며 마끼롤을 말아주고나서 알바를 안하겠다고 전하고 그만두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정착한 알바 자리는 Pepper Lunch라는 일본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돌판에 스테이크와 여러 재료를 올려 섞어 먹는 형태의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잠실 코엑스몰에 입점해 있었던 브랜드다. 나는 서빙과 홀 정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손님이 입구에 들어오면 입구 가까이에 있던 스텝이 '이랏샤이마세~!'라고 외치면, 홀에 있는 나머지 스텝들도 복창을 한다. 공식 최저시급보다 더 낮은 시급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에 방문했던 곳들에 비하면 가장 '평범'했기에 거기서 알바를 시작했다.


알바를 한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극심한 향수병에 걸리게 되었다. 가족이 보고 싶고, 한국이 그립고의 향수병이라기보다,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매일 6~8시간 알바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해 먹고, 영어공부를 잠깐 하거나, 책을 읽다가 잠들곤 했는데 그렇게 쳇바퀴 같은 일상이 계속 반복되었다. 어떤 날들은 영어로 대화다운 대화도 해보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게다가, 너무 낮은 시급으로는 시드니에서의 월세와 생활비를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워 부모님으로부터 50만 원가량의 용돈을 추가로 받아야 했다. 영어실력을 늘려야 한다는 방향성을 상실하고, 돈을 벌고, 먹고사는 일에 온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항상 배가 고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호주의 홈플러스, 이마트 격인 Coles에 가면, Coles PB 제품들이 있고 그것들이 가장 저렴하다. Coles PB 식빵을 집는다. 싼 값인 만큼 식빵은 아주 얇은 두께로 썰려져 있다. 그리고 잼을 하나 산다. 매일 아침 식빵 2개와 쨈을 며칠 동안 먹을 수 있을지를 계산한다.

작은 사이즈의 종갓집 김치통을 사서, 일주일에 얼마만큼의 양을 먹어야 하는지 4개의 층으로 구분하여 한 달간 먹는다. 그리고, 1시간 남짓한 거리는 대중교통을 사용하지 않고 걸어 다녔다. 시드니에 있는 동안은 교회를 갈 때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을 거의 타지 않았다.

만약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집->알바만 반복했더라면 좀 덜 배고프게 식비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이 방문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Coffee Club이라는 카페였다.

거기서 커피와 바나나브랜드를 사 먹는데 거의 매일 $7을 썼다. 이곳은 나에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아지트가 되어주었고, 외국인 노동자의 삶에서 잠시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오로지 영어공부만 생각하고 호주를 왔고, 안전에 대해 늘 주의하는 편이었기에 다른 워킹홀리데이 여행자들처럼 과감하게 농장으로 전환하려는 도전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만났던 언니오빠들 중에서도 호주로 넘어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소식을 들어보니, 농장에서 6개월간 일해서 일 년 치 학비를 벌어 한국으로 돌아갔더라 하는 이야기들도 들려왔다. 그렇게 고민하며 몸부림치다가, 호주에서의 생활을 더 연장하면, 학교로의 복귀도 한 학기를 더 쉬어야 했기 때문에 비용대비 득실을 따졌을 때 그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들어올 때 가지고 있었던 귀국 항공편의 날짜를, 다른 사람들은 귀국 날짜를 연장한다는 그 항공편을 무려 6개월이나 앞당겨 돌아왔다.

Pepper Lunch에서는 한 달 반만 일하고 그만두었다. 나머지 2주는 시드니에서의 시간들을 마음 편하게 누리며 지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조금 후회로 남았던 것은, 시드니라는 환경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좀 더 다양한 경험에 도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 역시 '돈'에 발목 잡는 문제여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05화워킹홀리데이 in 시드니 - ②어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