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의 4개월 어학연수를 마치고, 시드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껏 영어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으나, 시드니에 도착해 공항 안내 방송을 듣는 순간, 내 영어 실력이 여기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바로 느꼈다. 호주 특유의 영어 발음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신청한 유학원 패키지 프로그램에는 시드니에서 3개월의 어학원 수강과 첫 거주 쉐어하우스와 첫 일자리를 에이전트에서 알선해 주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부터 에이전트와 마찰이 시작되었다.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간 것이기에 쉐어하우스도 외국인이 있는 곳, 일자리도 외국인 오너가 운영하는 사업장으로 소개받길 원했지만 에이전트에서는 그런 조건으로 자리를 구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며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쉐어하우스와, 한국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청소업체를 알선해 주었다. 어렵지만 노력해 볼 시도조차 하지 않고, '너는 이미 호주땅에 와서 정착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군말 없이 우리가 제공해 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라고 선을 긋는 것이 느껴졌다.
시드니에서의 경험을 3가지로 구분해서 정리해보려 한다.
① 쉐어하우스 경험
② 어학원 경험
③ 일자리+친목 경험
첫 번째 쉐어하우스는 시드니 도심에 위치한 어떤 고층 아파트였다.
나를 포함한 여자 3명과 남자 3명이 거주하게 되었는데, 방 2개, 욕실 2개를 갖춘 집이었다.
여자방이 남자방 보다 커서 여자방에서 3명이 함께 지내고, 남자방에는 2명, 그리고 거실에 1명이 거주하는 방식이었다. 시드니의 임대료, 월세가 비쌌기 때문에 쉐어하우스 거실에 거주자가 있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이미 6명이 몇 개월 전부터 함께 살고 있었고, 최근에 여자방에서 1명이 나가게 되면서 그 자리를 내가 채우게 되었다.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가 7월이었는데 남반구에 위치한 나라이기 때문에 계절이 우리나라와 반대인 겨울인 때였다. 시드니는 난방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곳들이 많았고, 히터가 설치된 집도 있긴 했으나 내가 머무른 곳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실내에서의 겨울은 두꺼운 옷과 전기장판으로 버텨야 했다.
그 쉐어하우스는 여러 규칙하에 깨끗하게 유지되어 좋긴 했으나, 사람들이 사소로운 일에 예민하게 굴었고, 거실은 공유공간이 아니라 1명의 개인 공간이었기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내야 했다. 게다가 그들만의 라포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상태라 마치 나 혼자 남의 집에 얹혀사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집에 사는 동안은 영어권 국가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하숙을 하는 것 같은 생활을 하는 것 같아 2개월 후에는 다른 집을 구해 이동을 했다.
두 번째 집은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었는데 거주자는 나를 포함한 8명이었다. 브라질 남자 2명/여자 2명 , 미국 여자 1명, 한국인 남자 2명, 나. 방 2개에 욕실이 1개인 집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난 후의 욕실 사용은 전쟁과 같았다. 모두 어학원을 다니거나 알바를 하며 생활하고 있었고, 유쾌한 브라질 사람들은 집으로 지인들을 초대해서 조촐한 파티를 종종 열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 구성원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웠으나, 참을 수 없는 어떤 일로 인해 한 달 만에 집을 옮기게 되었다.
바로 바퀴벌레 문제였다. 한국인을 제외한 동거인들은 음식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지 않고 싱크대에 내버려 두고 하루가 지나서 치우거나 가끔 이틀 후에 치우기도 했다. 음식 부스러기가 테이블과 싱크대 선반 위에 나뒹굴어도 치우질 않았다. 식기와 조리도구는 공용인데 바로 치우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사용해야 할 때가 되면, 그들이 내버려 둔 식기를 내가 설거지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들과 같은 프라이팬을 도저히 쓰고 싶지 않아 개인 프라이팬을 따로 구비할 정도로 지저분했다. 이 문제가 계속 짜증 나는 일로 남아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거실 불을 켜자마자 기겁할 광경을 목격했다. 싱크대 선반에 열댓 마리 가까이 되는 바퀴벌레가 흩어져 있다가 동시에 사사삭 움직이며 틈새 구석구석 숨어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이다.
그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는 동안 바퀴벌레가 침대 위로 기어올라와 머리카락 속에 숨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옷 속에 들어가는 건 아닌지 온갖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야 집에서 요리를 해 먹곤 했지만, 더이상 요리는커녕, 집안에서 어떤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당장 이사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집주인은 이사 사유를 물었지만 진실을 말하지 않고 그냥 더 집세가 낮은 곳으로 이사하려고 한다고만 했다.
마지막 집은 다시 아파트였는데 호주인 남자 1명, 일본인 여자 1명, 나를 포함한 한국인 여자 2명, 이렇게 총 4명으로 구성된 집이다. 방 1개에 화장실 1개인 집이었고, 다행히 거실에 거주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 3명이 방 1개를 같이 썼고, 호주인은 '베란다'가 본인의 거주 구역이었다. 호주의 베란다는 여느 외국처럼 바깥으로 튀어나온 구조였는데 윗집 베란다 바닥 바깥 테두리에 커튼을 달고, 거실 쪽 경계문에도 커튼을 달아 베란다를 마치 방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안에 있을 때는 날씨가 맑은지 흐린 지, 낮인지 밤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 호주인은 아파트를 '임대'해서 다시 거주자에게 세를 놓는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3명이 이 호주인에게 월세를 입금하면, 이 호주인은 거기서 집주인에게 낼 임대료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자기 수익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집은 청결하고 정돈된 상태로 잘 유지되었고, 서로 조용하고 평화롭게 잘 지낼 수 있었다. 호주인 거주자는 나름 호스트로써 세 들어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배려해 주었다. 종종 파스타 등 요리를 해서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있었고, 화장지, 세재 등의 생필품들도 떨어지지 않게 구비되었었다. 특이한 기억 중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방 밖에 나오면 그 호주인이 거실에서 영화, TV시리즈등의 DVD 플레이어를 보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대부분이 좀비물이었다. 아침부터 좀비물을 보다니 취향 한번 독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사람들이랑 같이 보다 보니 익숙해져서 호러, 공포 영화를 정신건강에 해롭다며 절대 보지 않는 사람임에도, 좀비 영화는 예외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워킹홀리데이는 1년짜리인데 내가 거주했던 집은 3군데 밖에 되지 않는다.
이유는 5개월 만에 호주 생활을 접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호주에서의 생활이 '영어 향상'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먹고사는데 급급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심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마지막 글에 나올 에정이다.
다음 글은 시드니에서의 어학원 경험으로, 필리핀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영어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는 수업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