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의 내 인간관계는 크게 3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다.
1.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중에서도 일본인 친구들)
2. 쉐어하우스 메이트
3. 커피클럽
초반 2~3개월간은 한국인과의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며 외로운 생활을 홀로 하고 있던 나에게 이들의 존재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처음으로 친해진 친구는 첫날 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Sayaka다.
학원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주말에 무슨 계획이 있는지 반 학생들에게 물어봤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Hillsong Church 예배에 가보고 싶은데 가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물론, 이 질문은 "혹시 너네 중에 나한테 안내해 줄 사람?"을 돌려 말한 건데 선생님은 "인터넷에 찾아보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있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다행히도 내 의도를 알아차린 어떤 친절한 일본인 여학생이 "나 Hillsong Church 어떻게 가는지 알아. 너가 원하면 같이 가줄 수 있어"라고 했다. 그 후로 호주 떠나는 날 전까지 Sayaka는 나의 찐 단짝친구가 되어줬다.
Sayaka는 'Dog trainer'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는데,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엄청 다정다감한 성격의 친구였다. 이 친구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영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같이 Hillsong 예배를 여러 번 다녀왔었는데 어느 날은 설교 말씀에 마음에 감동이 커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Sayaka에게 혹시 설교 말씀을 알아들었는지 물어보았다. 많이 알아듣지 못했다고 해서
혹시 너가 바쁘지 않으면 잠깐 카페에 들러서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하고 그날 설교 내용을 메모한 것을 설명해주었다. 어떤 날은 가족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의 부모님은 이혼을 한 상태이고, 가족관계에 마음에 상처가 있었다. 나도 신앙을 가진지 고작 1년 반 밖에 안되었지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전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생겨 이 친구를 전도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는 Nagisa라는 일본인 친구다.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Sayaka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Sayaka를 통해 알게 된 일본인 친구들이 3~4명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Nagisa도 끝까지 찐 친구로 남은 귀한 인연이었다. 이 두 친구는 '일본인'에 대한 편견 바깥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Nagisa는 엄청 단정하고 고운 얼굴의 미인이었는데 일본에서 간호사 일을 하다가 호주에서 요양 간호사로 기술이민 기회를 얻기 위해 이곳으로 와서 영어 수업부터 듣고 있었다. Nagisa 우리 중에서 제일 맏언니였는데 개구쟁이 같은 장난기도 많으면서 아주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머무는 집에 기물이 낡아서 파손되었는데 집주인이 여러 번 연락해도 계속 미루면서 고쳐주지 않아 한바탕 싸운 이야기를 했다. 일본인들은 남들과 부딪히는 걸 최대한 피하려 한다고 생각했는데 불합리한 일을 용납하지 않고 맞짱을 잘 뜨는 그녀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Sakaya랑 Nagisa랑 같이 있으면 엄청 깔깔 웃어대던 내 모습이 기억이 난다.
쉐어하우스에서는 인연은 집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에만 한정되었다. 두 번째 쉐어하우스의 메이트들이 기억에 남는다.
거기에는 브라질인 Vivian, Ana, Rodrigo, Adriano와 미국인 Jay가 있었는데, 특히 Adriano가 정이 많았다. Adriano는 내가 두 번째로 알게 된 gay였는데, 첫 번째는 필리핀에 있었던 1:4 수업의 튜터가 그랬다.
필리핀은 워낙 gay가 많은 나라이기도하고, 그들은 말투나 몸짓에서 gay라는게 바로 티가 난다.
그런데 Adriano는 그런 것이 전혀 없는 너무 일반적인 남자처럼 보였어서 본인이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었다. (공용 식기와 조리기구를 쓰지 않고, 본인 식기, 조리기구를 따로 잠금박스에 넣어 쓰는 사람이어서 그 집 브라질 사람들 중에서 가장 깔끔했고, 인상은 도서관에서 빛을 안 본 지 오래된 안경 쓴 범생이 느낌...)
브라질 친구들이 파티를 열 때마다 내가 혼자 집에 남게 될까봐 같이 가자며 늘 먼저 손 내밀어 준 것은 Adriano였다. Adriano가 숙취로 꿈나라를 헤맬 때 수업이나 출근 시간에 늦을까봐 깨워주고, 1개 밖에 없는 욕실을 먼저 쓰라고 늘 양보해주곤 했었는데 나에게는 소소한 배려 같은 거였지만 그에게는 그런 친절이 꽤 크게 느껴졌었나보다.
싸이월드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바퀴벌레 때문에 이사 가야겠다고 하니 Adriano가 'Don't go'라는 말을 열번도 넘게 해서 괜스레 떠나는 마음이 무겁다. 바퀴벌레가 창문을 통해 내 침실로 날아들어오기까지 한다며 나는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없다고 질색을 했더니 그것들을 그냥 나비라고 생각하랜다. 이사 갈 집이 여기서 5분 거리 밖에 안되니 종종 놀러 오겠다고 하니 나더러 거짓말쟁이라며, 처음 여기 들어올 때는 아무 환경에서나 잘 수 있다고 말한 걸 기억하는데 고작 바퀴벌레 때문에 나가냐며 넌 떠나면 절대 이 집에 오지 않을 거라며 이젠 화를 낸다'
이 친구의 말이 맞았다. 나는 이사를 간 후 아예 이 집에 대해서는 잊어버렸으니까. 그래도 있는 동안은 그들로 인해 즐거웠다.
마지막은 커피클럽에서의 인연이다. 그곳은 커피와 바나나브레드가 맛있었고 시끄럽게 울리는 공간이 아니어서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라 종종 방문하고 있었다.
먼저는 학원에서 엄청 성격 좋은 한국인 학생인 Sally와 Jack을 알게 되었고(이 둘은 나중에 커플이 되었다), 처음에는 교류가 없다가 몇 개월 후 우연히 커피클럽에 앉아 있는 걸 보고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근처에 앉아 있는 호주인 아저씨 Robert까지 친해지게 되었다. Sally와 Jack은 이미 Robert아저씨와 친하게 알고 지내는 사이였기에 나까지 바로 그 자리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 그룹이 나중에는 내 일본인 친구들과 그들의 친구, 커피클럽의 스텝인 인도인 Kesh와 말레이시아인 Pho까지 합류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말 그대로 커피클럽이라는 카페이름이 커피클럽모임처럼 되었다. 우리의 활동은 주로 커피클럽에 앉아서 수다 떠는 것이 전부였는데 옛날 사진을 보면 같이 노래방도 가고, 당구도 치고, 산책도 하고 나름 즐거운 액티비티들도 같이 했던 게 보인다.
Robert아저씨는 나만큼이나 단골이어서(매일 가면 매일 보는 사이), 더 친해졌고 나중에는 집에 초대를 받았다. Robert아저씨 집은 차로 1시간 떨어진 도심 외곽에 위치해 있었는데 집에 처음 들어갈 때 원목마루가 깔린 곳이라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어서 신기했다. 거기서 사모님과, 아저씨의 장성한 자녀들(직장을 다니고 있는 따님과, 대학생인 아들 2명)도 만나서 바닷가에서 놀고, 하룻밤 묵기까지 했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바닷바람을 쐬어서 그런지 목감기에 걸렸고, 사모님이 자기 전에 따뜻한 오렌지 주스를 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느낌에, 사모님께 사전 공유나 허락 없이 나를 집에 초대한 것 같았다. 두 분은 별 대화가 없어 살짝 냉기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다음날은 아저씨의 취미인 사진 인화를 위한 암실과 여러 사진 작품들도 구경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곳도 갔다. 이분은 개인 장비가 있어 그걸 차에 싣고 이동했다. 아저씨가 꽤 강권하셨지만 나는 쫄보여서 패러글라이딩을 시도하지 않고 아저씨가 타는 것만 구경을 했다. 지금은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경험이었는데 해볼걸 하는 후회가 있다.
Robert아저씨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내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롤링페이퍼도 작성하고, 식사 자리도 마련해 주셨다. 아저씨가 선물로 준 캥거루와 코알라 공예품이 아직 부모님 댁 장식장 위에 올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인사할 때 그 짧은 기간 정이 든 친구들도 다 울고 그랬더랬다. 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도 아니고, 내성적이고, 다정다감한 편도 아닌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인연을 만들어 주어 참 감사하다.
Robert아저씨를 커피클럽에서 처음 봤을 때 혼자 일본어를 공부하고 계셨는데 그 후로 2달이 지나도 일본어 실력이 1도 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거기서 우리를 만나면 공부는 뒷전이고 수다를 떨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뜬금없는 것은 그 후로 2년 뒤, 아저씨가 사모님과 이혼을 하고, 일본인 여성과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집에 초대받았을 때 느낀 냉랭함은 두 분 관계가 이미 소원해진 상태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Sayaka와 Nagisa는 이메일과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종종 주고받다가 일본에 큰 지진이 났을 때 마지막으로 괜찮냐며 상황을 주고받았던 게 마지막이었다. 아주 가끔 페이스북에 여행사진을 올리면 그들로부터 '좋아요'만 붙긴 한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지만 여전히 생생하고 그들과의 추억이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