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버 Feb 29. 2024

2월 29일. 예술가와 함께 산다는 건

오늘의 뮤지컬, <라흐 헤스트>-'예술가와 함께 산다는 건'




2004년 2월 29일, 뉴욕의 자신의 방에서 일기장을 거슬러 넘겨보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1936년 2월 29일, 모더니티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는 한 여학생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김향안, 변동림.


한국의 수필가이자 미술평론가이며 서양화가이기도 한

김향안의 사랑과 인생을 노래한 뮤지컬 <라흐 헤스트>의 첫 장면입니다.



그녀의 이름이 조금 낯설다면 이렇게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화가 김환기를 기념하며 지어진 환기미술관의 설립자이자 그의 아내이며,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 이상의 아내이기도 했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김향안입니다.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녀의 원래 이름은 변동림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너무나 좋아하고 총명했던 그녀는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고 문학활동을 했던 지식인이었는데요.

1936년, 경성의 예술가들이 모이던 카페 낙랑파라에서

동림은 시인 이상을 만납니다.

문학소녀였던 그녀는 이미 그의 글을 알고 있었고, 둘은 매일같이 문학과 음악을 이야기하고 매일밤 함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걷던 어느날 이상이 동림에게 말합니다.


"우리 같이 죽을까? 아님 먼 데 갈까?"


고백이었습니다. 물론 흔한 고백의 문장은 아니죠.

하지만 동림은 이 비범한 고백을 받아들였고,

1936년 둘은 결혼합니다.


뜨거운 지성과 정신적인 교류가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당시 이상이 평탄치 않았던 삶을 살고 있었던 탓에 그들의 신혼생활은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았습니다.

게다가 결혼 4개월만에 이상은 홀로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버렸고, 그곳에서의 궁핍한 생활과 수감생활로 폐결핵이 악화되어 1년 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이렇게 둘의 결혼생활은 끝났고, 동림은 혼자 남았죠.





동림이 슬픔을 이겨내며 다시 글을 쓰고 일을 하기 시작했던 1940년대 초, 이번엔 키가 크고 마른 한 시골 남자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그는 동림을 처음 본 후부터 꾸준히 그녀에게 마음을 담아 그림 편지를 보내었고, 따뜻하고 다정한 그 글과 그림에 동림의 마음도 열렸어요. 그리고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에게 말합니다. "향안, 그 이름을 내게 줘요."라고요.

 

향안은 그 남자, 화가 김환기의 아호였습니다.

동림은 그의 마음과 이름을 받았고, 김향안으로의 삶을 선택한 것이었죠.




그녀는 똑똑하고 당차고, 헌신적이었습니다.

환기와의 결혼생활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그가 예술에 몰두할 수 있도록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하며 아이들을 키웠고

재능있는 화가였음에도 세계로 나가볼 자신이 없던 환기를 대신해

먼저 프랑스로 유학을 가 기반을 다 마련한 후 그를 초대해 전시회를 열며 김환기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렸죠.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훌륭한 예술적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의 사후에도  향안은 김환기의 작품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게 했고, 환기재단을 설립해 작가들을 후원하고, 환기미술관을 세워 경영하며 그의 예술을 기념했어요.




김향안은 렇게 살아가는 와중에 틈틈이 글을 고, 그림도 그려 서양화가로 등단하기도 했습니다.


예술을 사랑했고,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그 재능에 아낌없이 조력자 되어 주었,

리고 그 자신이 예술가였던 김향안.









오늘의 뮤지컬 <라흐 헤스트>에서는 그녀를 향안과 동림  2인 1역으로 하여 향안과 환기, 동림과 이상의 시간을 역으로 교차시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향안과 동림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는데요.




림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100% 느낌표는 아니야."


그리고 시작되는 오늘의 노래.



-


예술가와 함께 산다는 건

아마 그럴거야.


찰나의 행복을 간직하고

그 기억으로 살아가는 일


그 사람이 남긴 흔적으로

오랫동안 삶에 향기를 품는 일


-




제목 '라흐 헤스트'는 프랑스어 "L'art reste", 즉 "예술은 남다"라는 뜻으로

김향안이 남겼던 말인 "사랑은 가고 예술은 남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요.



사랑하는 사람의 예술성과 천재성과 진심을 누구보다 분명히 알아보고 후원하는 것 역시 그녀였기에 가능했을 터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참 멋지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인생을 살아가기로 했을 때 현실적으로 맞닥뜨릴 어려움 역시 선명하다면,

저라면 그 사랑을 선택하는 데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느낌표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고,

그 남은 흔적들에 향기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20년전 오늘,

기가 되었습니다.






든 찰나에 용기있게 반짝이며 살아온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을지 궁금해지는 날입니다.










-

2023년 재연이 올라오기 전 공개되었던 스페셜 클립 영상입니다.

무대가 아닌 뮤직비디오이니, 작품이 궁금하다면 또 다른 영상을 찾아 들어보시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어떨까요:)

https://youtu.be/EiEfH0pqvKI?si=fKaBghg3CaLpWhpj


매거진의 이전글 2월 22일. 내 목숨 다 바칠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