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조 작가의 집을 다녀와서
평생 한길을 걸으며 나아간다는 것은 지독한 고행과 끝없는 자기 의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길이 맞는 건가, 나는 제 때 길을 들어선 걸까, 이 길 끝자락엔 무엇이 있을까.
작가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것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독특한 세계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기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무던히 기다리면서 버텨야 한다. 힘들다고 급을 낮추며
세상에 섞이면 절대로 안된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다는 건 부단히 발전해 왔고 내 작품에
대한 긍지를 가질 만큼 잘 만들었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베스트가 되면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기조>
대가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벼운 대화 속에도 진리가 번뜩인다. 스스로 체험한 일들이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칠 년 전에 만났을 때와는 달리 자신의 작업에 대한 확신이 대단했다. 세상의 평판은 이미 얻었다. 그때도 이미 유명작가였지만 지금은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 같다.
자신의 작업이 이제야 가까스로 알려지기 시작한 젊은 작가에게 들려준 위의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이야기해 준 거라는 걸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알고 있다.
달항아리는 따로 만든 윗부분과 아래부분을 맞붙여 물레를 돌리며 하나로 만드는 것인데 어떤 모양이 나올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굽는 방법도 중요한데 전기가마가 아니고 장작가마를 써서 달항아리를 만드는 유일한 작가가 이기조 작가이다. 불가마안으로 들어가서 구워진 달항아리를 살펴보면 열 개 중에 두세 개 정도만이 남길만한 것이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부숴버린다. 불이 훨훨 타오르는 가마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난 작은 붉은 꽃모양이 피어있는 큼직한 달항아리가 제일 마음에 들어서 한참을 앉아서 들여다보다가 철화문양처럼 보이는 붉은 꽃무늬는 뭐냐고 했더니 철화로 그린 문양이 아니고 온도와 흙과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나타나는 희귀한 현상이라고 했다. 오롯이 우연이 만들어내는 무늬였던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유난히 이 무늬가 피어있는 도자기를 좋아해서 '모미지'라고 부른다고 했다. 모미지는 단풍이라는 뜻의 일본어이다.
작가의 일상은 단순하고 반복되는 노동 안에서 삶의 균형을 찾는 것 같다. 그는 소나무를 전정하는 일은 명상의 시간이라고 했다. 넓은 정원의 잔디를 가꾸는 일이나 불타는 가마 안에 들어가서 무거운 달항아리를 들어 올리는 일등은 모두 그의 도자기 작업의 일부인 것이다. 그는 요리를 잘하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요리를 잘 아니까 그가 만드는 그릇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쓰임새가 좋다.
육십 년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내 안의 나를 탐구해 왔던 작가는 이제 편안해 보인다. 그의 말투는 잔잔하면서도 확신에 차있다. 그의 달항아리는 그의 삶처럼 다양한 변주를 보이면서도 바라볼수록 편안해진다. 그의 작품들은 그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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