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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준희 Apr 27. 2023

내가 템플스테이를 하는 이유

  이번엔 마곡사

 마곡사는 고즈넉한 절이다. 내비게이션이 지방도로를 안내해서 한적한 길로 두 시간을 갔더니 도착했다. 이번이 세 번째이다. 마치 친척집에 간 것처럼 편안하다. 반복되는 스트레스는 피해야 하는 거라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자리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잠시 떠나 있다 오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매일매일 신나게 지낼 필요가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 혼자 잘 사는 것으로 모든 관계가 편안할 수 있다면 사는 게 참 쉽겠지만 삶은 쉬운 게 아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이유

 절에서 지내고 오는 것이 나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일상이 돼버린 것 같다. 그 유용함이 기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는 불신도가 아니니까 유용함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일단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지내다 오는 것이 첫 번째 좋은 점이고 두 번째는 나의 갑각류 알레르기(새우, 게, 랍스터를 먹으면 안 된다. 새우젓 김치 포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식단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불교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내버려 두니까 내 안에서 답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네 번째는 간소한 옷차림, 넘치지 않는 음식, 넘치지 않는 방이 무엇보다 좋다. 그런 절제는 정신에 여유를 주게 되는 것 같다. 단 하룻밤을 묵어도 떠날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이 느슨해져서 떠나게 되니 그 맛에 다시 찾게 된다. 


 연등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준비로 절 안에는 연등이 곳곳에 있었다. 절을 가로지르는 냇물 위에도 연등이 둥둥 떠 있고 전각의 지붕아래에도 나뭇가지에도 색색의 연등이 달려 있었다. 공양간 옆의 관음전에서는 한 잎 한 잎 정성으로 만드는 연꽃등을 비구니 스님 지도아래 신도들이 온종일 만들고 있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물건을 방안 가득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그렇게 만든 연등으로 온 절이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편백나무 방

 이번에 묵었던 곳은 템플스테이 신관이었는데 벽과 천장이 편백나무로 되어있어서 방에 들어서니 나무향이 가득했다. 깔끔한 욕실까지 달려있으니 호텔이 부럽지 않았다. 생체리듬을 두 시간씩만 당기면 며칠 더 묵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MBTI 가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타입이라고 나오는 걸 보면 나의 템플스테이행은 필연이다.


  뜻밖의 선물

 아침을 먹으러 공양간으로 가는데 냇물 바위 위에 원앙새가 한 마리 앉아있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새를 직접 보니 숨이 멎게 아름다웠다. 온몸이 붓으로 칠한 듯 색색으로 되어 있었다. 조용히 한참을 앉아있었고 나도 그렇게 바라보았다. 핸드폰을 방안에 두고 온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그 냇물엔 수달도 산다는데 다음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수달을 바라보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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