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매화를 보러 선암사에 다녀왔다. 이번에도 역시 개화시기 맞추는데 힘이 들었다. 이 월말에 갔을 때 꽃은 한 두 송이만 피어 있고 작은 분홍구슬이 무수히 달려 있었다. 아주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꽃봉오리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알려 줄 뿐이었다. 스스로 피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절대적인 존엄마저 느껴졌다.
삼 주 후에 다시 갔을 때는 제대로 핀 모습을 보았고 그윽한 향기에 취했다.
순천 시내에 일찌감치 피었던 홍매화는 향기가 거의 없었다. 심은 지 몇 년 안 된 나무이기 때문인 것도 같고 공해에 시달린 탓도 있을 터였다.
조계산 자락 깊은 산속의 절에 핀 천 년 된 선암매의 향기에 매료되어 해마다 삼월이면 내 마음은 그곳에 가 있다. 어쩌면 매화는 핑계일 뿐이고 그곳의 스님들을 만나고 싶어서 가는 건 지도 모른다. 부지런히 수련하시는 젊은 스님들과 노스님들의 하루를 지켜보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곳에 가면 새벽 세 시 반에 시작하는 새벽 예불에 꼭 참석하는데 고령의 방장 스님부터 아주 젊은 스님들까지 모두 모여 한 마음으로 우렁차게 예불하는 모습에서 많은 걸 배우게 된다. 다른 사찰들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규율과 정성이 이곳에서는 느껴진다.
매 번 놀라게 되지만 템플스테이를 담당하시는 스님, 그리고 갈 때마다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방장 스님은 나의 얼굴에서 마음을 읽어 내시는 것 같다. 이번에도 구체적으로 집어내며 한 말씀을 하시는 데 정신이 퍼뜩 들었다. 수련을 열심히 하다 보면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는 것일까. 답을 주는 건 아니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마음을 돌려놓는다.
매화를 보러 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선암매의 향기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향보다 더하다는 걸 기억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