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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Oct 20. 2022

출퇴근 여행 일기 4.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아빠는  질문에 내가 돈을 쓰려는  알고 약간 질색하셨다.

아빠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지갑에서 돈 나가는 것이니까.

옷을 사거나 구두를 사드려도 절대 입지 않으시고 모아두시기만 한다.


나는 이제까지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아빠에게 어울릴만한 옷감이라던가, 천의 패턴만 신경 써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아빠는 분홍. 그것도 아주 연한 분홍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수면잠옷을 곱게 입고 계실 때조차 그 색은 베이비핑크였다!

그리고 더 소름이 돋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도 베이비핑크다.




출처: 팬톤




아빠가 좋아하는 색의 이름을 알게 되자, 나는 아빠가 좀 더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강한 색보다는 부드럽고 고운 색을 좋아하시는구나.

아빠의 마음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조금 더 섬세하고 어찌 보면 예민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조금 더 선명히 떠오르는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사람을 인칭대명사로, 아빠, 엄마, 아버지, 어머니로 바꿔 부를 때 어쩌면, 그 대상은 우리에게 절반의 모습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부를 때 내가 스위치를 나에서 '엄마 모드'로 바꾸듯 말이다.


그렇다면 선명히 상대를 있는 그대로 기억해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의 취향을 알아내자. 그러면 전체는 무너진다.

새로운 구체적 사실로 직조되는 나와 가장 가까운, 그러나 가장 멀기도 한 그 존재의 묶음.

이 행위가 먼 훗날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기억의 섬유 다발.

그리고 일부를 받아 적어나가는 내 키보드 자판.




출처: 영화 <打ち上げ花火、下から見るか? 横から見るか?(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1993. 이와이 슌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제목을 빌려 이렇게 말해보려 한다. (불꽃놀이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우리 아빠,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공감 #에세이 #공감에세이 #글쓰기 #아빠 #부모님 #글쓰기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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