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 역시나 싫다.
회원님 안 오세요???
늦었다. 매번 나는 이런 식이다. 역시 첫날부터 지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등록한 수업은 5인 규모의 집중 레슨반이다. 당연히 수강료는 비싸다. 변명을 해보자면 여름이라 그런지 단체 수업은 자리가 나지 않았다.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빠지면 안 되는 가격.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아니 웃게 될까 울게 될까.
‘물 안으로 얼른 들어오세요!’
강사분은 젊은 남자 선생님이다. 괜시리 쭈뼛대며 물속으로 들어서는데 생각보다 물이 꽤 깊다. 심장 위로 물이 올라오자, 숨이 헉 막히는 것만 같다. 선생님은 스트레칭 겸 준비 운동으로 레인을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하신다.
헛둘 헛둘.
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마치 달을 탐사하듯 레인을 겅중겅중 걸어간다. 옆 라인에서는 할머님들이 돌고래 못지않은 날렵함으로 물살을 가르며 자유 수영 중이시다.
‘…와 부럽다.’
내 능력 밖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질투심보다는 그저 정말 다른 세계의 일처럼 ‘관찰’하게 되고 ‘탄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지금이다. 나는 절대로 저렇게 잘하신 못 할거야라는 생각을 주억거리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
강사는 나에게 어디까지 수영을 배웠냐고 물었다. 사실 7살 때부터 수영을 다녔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고 키판 잡고 발차기 정도는 해 봤다고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바로 날아온 키판.
‘고개 물속에 넣으시고 음-파. 아시죠? 그거 하면서 발차기해 볼게요. 몸에 힘 빼고 손은 그냥 벽을 민다고 생각하시면 몸이 둥. 뜹니다.’
어 이거 뭐야. 어렸을 때는 발차기만 한 달을 한 것 같은데 아닌가요? 오늘 그냥 거기서부터 바로 수업이 들어간다고요? 갑자기 준비 없이 훅 들어온 선생님의 지시. 내 옆의 수강생은 나보다 더 경험이 적은 것 같은데도 곧잘 숨을 참아낸다. 나는 이미 물속에 들어온 것 자체가 타격감이 큰 터라, 경쟁심을 느낄 새도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고개를 겨우 넣고 음파를 해 본다.
‘어? 뜨네?’
부우우웅. 바닥 타일의 감촉을 느끼던 발바닥이 부우웅 물 위를 가로지르더니 내 몸과 수영장 바닥이 수평이 된다. 호흡을 마시고 고개를 물속에 넣는 순간, 수많은 소리로 울리던 이쪽 세계가 물속의 고요함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상했다. 분명 나에게 늘 두려움을 줬던 물이었는데. 오늘은 그 적막함이 안정감을 주다니.
선생님은 발차기 예시를 몇 번 보여주고 나와 다른 수강생에게 키판을 잡고 호흡하며 발차기로 왕복하기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몇 개월이라도 더 수영을 접해본 내가 먼저 출발하기로 했으나, 아직 레인 전체를 쉬지 않고 나아가기는 무리였기에 순서는 자연스럽게 뒤바뀌었다.
‘역시. 난 운동 쪽은 아니야.’
나는 부담감을 덜어내고 그저 버둥거리며 배운 대로 발차기와 음파를 계속했다. 정말 죽어라 발차기하는데도 앞으로 나간다는 감각이 없다. 앞서 출발한 수강생은 이미 출발점에 도착해 숨을 고르고 있다. 내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몸의 온도는 점점 오르기 시작한다. 결국 레인 가운데 멈춰서서 시계를 보니 아직도 10분이 남았다. 벽면에 쓰인 ‘50분 수영 10분 휴식’ 글자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생각한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
생각해 보면 그다지 배를 불리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이 수업을 완료했다는 것만으로도 목적은 달성한 것이다. 오늘 나는 늘 두려움을 주기만 했던 물이라는 세계의 전혀 다른 얼굴을 잠시나마 보지 않았던가. 바로 물 밑 적막과 고요의 안정감을 말이다. 어차피 못하는 수영. 부담이나 덜고 도장이나 찍자. 그런 마음으로 수영장을 나서며 오트 라떼를 손에 쥐고 쏟아지는 여름 광선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