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타자기 Aug 13. 2023

아, 나이키 정신!

불완전한 완벽주의자 수린이.

오늘은 늦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정말로 정말로 나는 오늘 수영이 가기 싫다. 그래봐야 2회 차.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나는 잘하지 못하고 흥미가 당기지 않는 것은 지레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수영을 포기했었던 것은 ‘두려움’과 더불어 그 ‘못함’이라는 커다란 장애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여섯 살배기 어린이가 산다. 그 어린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취약한 편. 자신이 잘 못한다고 생각하니 점점 더 하기 싫어지고 급기야 며칠 전에는 유치원 등원을 거부까지 했었다. 나는 어린이에게 “뭘 하든 다 괜찮아. 조금 해도 좋고, 많이 해도 좋아.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돼. 그림은 그런 거야.”라는 말을 하며 아이를 달랬었다. 아이는 입을 삐죽이며 겨우 원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운전대를 잡아 쥐며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아이의 완벽주의 성향은 누구를 닮았을까? 바로 나다. 나도 딱 한 번 수영을 가서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벌써 가기 싫어하고 있지 않은가.

재빨리 샤워하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서자, 물을 유유히 가르는 할머님들이 보인다. 나는 개인레슨 레인 앞에서 스트레칭을 해본다. 그때 한 할머님이 나에게 말한다.



“여기 레인 이제 못 써?”

“…네. 레슨 시작이어서요.”

 “아우 짜증 나!!”



이제, 수영 오기 싫은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분명 안내서에는 30분 일찍 와서 연습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왠지 초보인 내가 낄 틈이 없어 보인다!



레슨이 시작되고 어제와 같은 자판 잡고 발차기로 레인 돌기 연습이 시작된다. 오늘 새로운 회원분은 대충 자유형 호흡까지 숙달하신 분. 나는 부러움의 눈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키판을 훅 밀고 고개를 물 속으로 넣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고요의 파아란 수영장 타일 세상이 나를 맞이 한다. 어릴 때처럼 아주 무섭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왜 앞으로 잘 안 나가지?”



죽어라 발은 차고 심장 박동은 빨라지는데 내 눈에 보이는 수영장 바닥 타일의 모습은 거의 변함이 없다. 내 뒤에 오던 수강생은 벌써 나를 앞질러 갔다. 최근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매일 스쿼트를 백여 개씩 해왔다. 그간 나름 8킬로도 감량하고 허벅지의 근력도 키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저는 왜 앞으로 안 나가죠?”



그는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영 2회 차에 초보면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얘기를 좋게 좋게 둘러 했다. 아울러, 킥을 지금보다 더 차 주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다리가 너무 아픈데요…”

“그래도 참고 가야 해요. 흐흐”



선생님은 엄청나게 큰 초시계를 가져오시더니 한 바퀴를 돌고 오면 딱 30초만 쉬라고 하셨다. 소규모 인원 레슨이라서 더 좋은 점? 지금은 그런 것 따윈 생각나지 않는다. 인원수가 적기에 돌아야 할 바퀴 수가 더 많다는 것에 멘붕이 오는 정도. 나와 수강생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역시나 홈트레이닝도 수영도 이 세상에 쉬운 건 없다.



레인을 돌다 보니 내 속도가 현저하게 늦다. 두 명은 벌써 골인 지점에 도착하여 선생님과 대화 중이다. 속에서는 불이 난다. 나의 완벽주의. 그렇지만 어찌 보면 수영은 내가 뛰어나게 잘 해내고 싶은 기술도 아니며, 재능이 있거나 딱히 흥미가 있는 영역도 아니지 않은가. 못하면 어떤가. 그냥 ‘하면’ 안되나?



그렇게 살짝 찾아온 좌절의 감정을 물살에 실려 보내 버리고 나는 레인 중간에 멈춰서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발차기를 다시 시작했다. 세 명 중 호흡, 발차기,  파워 꼴찌인 나. 그러나 나의 목표는 일등이 아니다. 물속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것. 그 시간을 위하여 ‘그냥’ 하련다. 그냥. 나이키 정신으로. JUST DO IT.

작가의 이전글 물 안으로 얼른 들어오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