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선물 ㅣ 기절하기 전 눕기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뱃속의 아이만을 위해 지냈다.
처음 겪는 모든 것들에 적응해야 했고, 신기하고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뱃속에 아이가 생기니 나는 다시 공주 대접을 받았다.
난생처음 겪는 입덧에 당혹스러웠다.
안 그래도 살이 없던 나인데, 조금 가지고 있는 영양분을 아이와 함께 나누다 보니 자꾸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기립성 저혈압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CS 강사 교육을 들으러 다녔던 강남에서 기절했던 것 같은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갑자기 식은땀이 쭈욱 나면서 온몸에 힘이 빠지며 잠시 기절하는 증상 말이다.
그렇다고 가끔 찾아오는 증상 때문에 집에만 있을 수도 없었기에 조심하며 다니기로 했다.
집 앞에 6차선으로 된 도로의 신호등을 건너면 이마트가 있었다.
자주 들려서 장을 봤었다. 그날도 장을 보려 마트에 들렀다. 내가 좋아하는 물고기랑 동물 코너도 구경하는 그 순간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었다. 2층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때 누가 봐도 임산부 이구나 하는 정도의 배가 나와있는 때였다.
화장실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 나는 그대로 잠시 기억을 잃었다. 일어나 보니 아이를 지키겠다고 바닥으로 손을 짚은 채로 허리가 꺾여서 기절해 있었다. 다행히도 쓰러지지 않았다.
식은땀으로 흥건해진 몸을 바로 일으키지는 못하고 잠시 화장실에 멍하게 있었다.
신랑에게 전화해 상황을 이야기했다. 일을 하고 있는지라 올 수 없었기에 혼자 화장실에 앉아 쉬었다.
집이 바로 코앞이다. 집까지만 가면 침대에 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또 쓰러질까 겁이 났지만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이날 이 가까운 거리가 이렇게 멀게도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식은땀이 쭈욱 나고 난 후엔 온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 그대로 나는 침대에 누워 쉬었다. 아이를 품는다는 것은 참 신비롭고 위대한 것 같았다.
내 몸 하나 챙기기 어려운 나였는데, 그 몸속에 작고 소중한 생명을 품고 키워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몇 주는 물과 조금의 과일만 먹으며 버텨내고 갑자기 찾아오는 배 뭉침과 밑 빠짐의 통증들을 견디어 내야지만 소중한 아이를 만나고 엄마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아이를 만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를 곧 볼 수 있다는 즐거움보다는 솔직히 두려움과 불안함이 컸다.
말로만 듣던 산통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랑과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만삭이라 조금 불편했지만 건강하게 잘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이었다. 배 뭉침의 증상이 있었는데 내 머릿속에 있던 불안한 생각들이 더 큰 불안을 만들기 시작했나 보다.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숨쉬기 어려웠다. 밥을 먹다 신랑에게 이야기하고 도망치듯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타고 산부인과로 내달렸다. 금세 안정이 되어 도시락을 사서 집까지 걸어갔다.
집에 도착해 도시락을 먹으려고 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양수에 오늘 인가보다 하며, 챙겨둔 짐을 가지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그렇게 저녁도 못 먹은 채로 나는 진통을 시작했다. 처음 겪는 진통은 상상이상의 고통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똥구멍으로 수박이 나오는 통증이거나, 기차가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가는 통증이라고 들었다. 아픈 것에 집중이 되다 보니 아이는 안중에 없고 소리만 지르고 있는 나였다. 임신 중 다녔던 요가와 수체조에서 배웠던 호흡을 생각하면서 호흡을 하며 아이를 기다렸다.
복도에서 남편과 함께 짐볼 위에서 운동을 했다.
"아악!! 너무 아파!!!"
'드르렁~ 드르렁~'
"아악!! 너무 아프다고!!"
'드르렁~ 드르렁~'
아픔과 졸림 사이에서 사투를 버리며, 아침 9시 담당 선생님에게 아이를 받기 위해 버텼다..
9시에 나는 가족분만실로 들어갔고 무통주사 없이 30분 만에 첫째 아이를 만났다.
아이 낳으려면 힘내야 한다며 고기를 먹는다 했는데, 난 저녁도 굶은 채 정신력으로 버텨 아이를 낳아서 그런지 아이는 손가락을 빤 채로 엄마를 반겼다.
2014년 8월 5일 아침 9시 30분 3.25K의 나의 첫 천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