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대윤 Jul 01. 2023

FLEX 해버렸지 뭐야

하지만 나는 안빈낙도.

"Flex"는 어느 나라 말일까?? 영어로 쓰여 있는 이 단어는 원래 그대로 갖고 있는 뜻으로 쓰이는 것일까.


얼마 전부터, 이곳저곳에서부터 "Flex", "Flex" 소리를 너무도 많이 들어서, 이 단어의 의미를 딱히 알고 싶지도 않던 내가 그 의미를 찾아보았더란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플렉스'는 보통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다. 주로 돈이나 차, 라이프 스타일 등을 자랑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특별한 의미 없이 추임새로 활용되기도 한다.


음, 그러니까 말이다.

"Flex"는 있는 척한다는 뜻이 되겠다.




우리 나이가 되면(필자의 나이는 "불혹"을 넘겼음만 밝히겠다.), 안 그래도 자랑거리를 찾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 첫 번째, 자랑거리는 자식 자랑 거리.

가령, "아니, 우리 애가 있잖아. 또 전교에서 1등을 해버렸네!!!"라는 쌍팔년도 식의 자랑이다. 결혼도 안 했고 결혼에도 별 관심이 없으며, 심지어는 자식은 내 등골 휘어먹는 존재들로 낙인지은 필자에게는 하나도 공감이 되지 않는 자랑이다. 


"응, 그래... 축하해...:)"라는 이모티콘 비슷한 표정으로 전혀 공감이 안 되지만 공감해 주는 척을 하면 끝난다.


두 번째, 자랑거리는 살짝 배가 아프다. 지인들의 성공 소식 이야기를 듣는 것.

예를 들어, "이번에 우리 회사 매출이 얼마가 올랐잖아?? 그래서 순이익이 얼마나 크게 올랐는지 몰라..."

혹은, "이번에 주식에서 이득을 좀 봤지. 사실, 돈을 버리기는 그래서 그냥 손해 보더라도 주식에나 넣어두자라고 한 건데 도리어 올라버렸네. 이럴 때 참 난감하더라고?!"라는 말 따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서 "어, 그래. 좋겠다."라고 말하기에는 왠지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것이 되는 것 같고 또 안 하자니 속이 좁은 꽁생원이 되는 것 같고, 참 난감한 동시에 속이 배배 틀리는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세 번째.

이 자랑이 바로 "Flex"에 관련된 자랑들이다.


예시 1."형님, 저 이번에 차 바꿨잖아요. 벤츠로요. 2억 좀 넘게 준 것 같아요."


예시 2."그 시계 예뻐 보인다. 그래도 몇십만 원은 넘겠지??"

         "친구야, 말이 좀 그렇다?? 이 브랜드 몰라?? 천만 원 넘는 시계야~!!"


예시 3."이 번에 렌즈를 바꿔야곘는데, 어떤 렌즈가 좋을까요??"

         "아, 뭘 고민해요. 그냥 라이카로 싹 다 바꿔요!!!"


앞에서 말한 크게 두 카테고리와  다르게 세 번째 카테고리의 예시들은 주로 "Flex"와 어울리는 예시들이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기에는 이 친구가 벤츠인지 BMW인지, 뭐를 타기에 경제적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친구는 아주 간단히 그 사실을 인정하며 뒤집어 버린다.


"Flex 하는 거죠, 인생 별 거 있나요??"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참 바보 같이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한 때, 길거리에서 대학생에게도 "신용카드"를 남발해 주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은 MZ세대이니 당신의 젊음을 자랑스러워하라.)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신용카드"를 신청해서 발급받았지만 나는 끝끝내 카드를 발급받지 않았다.


아마도 이 것이 그 시절의 "Flex"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렇게 "Flex"를 즐기던 이들.

얼마 되지 않는 카드 한도도 갚지 못해서 신용불거래자가 된 이도 많았더란다.


하지만 현재의 "Flex"는 그보다도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억대를 넘어가는 자동차, 몇 천만 원을 호가하는 시계, 천만 원에 달하는 카메라까지 모두 다 입을 쩍 벌리고 들어야 하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괜찮다.


인생 별 거 있나, "인생은 Flex니까."




문득, 나도 "Flex"하고 싶은 것들을 쭉 써봤다. "억"까지는 아니지만 내 기분만큼 달릴 수 있는 자동차. "몇 천만 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예쁜 "시계". "카메라"에는 굳이 신경을 안 쓰지만 안정된 성능을 낼 수 있는 새 "카메라".


이 모든 것을 우선 지르고 나도 한 마디 해보는 거다.


"Flex!!"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알뜰하게 다녔다고는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학자금, 내 이름으로 되어있는 신용대출 등등. 신경 쓰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정말 "Flex"는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능력을 나 스스로 한탄할 수밖에.




옛날처럼 "안분지족"이니 "안빈낙도"니를 입으로 말하면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오히려 정신적 승리로 이끌어내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미친 짓일 뿐이다. 하지만, 당장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것을 마음을 끓여가며 닮고 애달파하며 아파하는 것도 바보스런 일이다.


난 지금 애닯파하며 아파하는 대신 "안빈낙도"를 다시금 읊조리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대사회에서 미친 짓일 뿐인 이 단어들에게 힘을 실어 나를 안정시키는 것으로 세상에 맞서 발버둥 치며 저항하고 있다. 당장 며칠 뒤면 200여만 원이 수리비로 들어가야 하는 내 차 "그랑죠", 전지만 바꿔주면 몇 시인지 또박또박 알려 줄 "시계", "어떤 카메라를 쓰시나요?"라고 내 카메라보다 훨씬 좋은 카메라로 찍으면서 내게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는 되는 털털한 "카메라". 이 정도면 "안빈낙도"는 되지 않을까.


"Flex"하고 싶다. 진심으로 하고 싶고 애타게 원한다. 하지만, 우선은 하지 못했던, 이루지 못했던 것을 노력해 보기로 했다. 그것도 인생에 있어서 "Flex"아닐까. 노력의 "Flex"


이 단어로 멋지지 않은가.


"무한한 노력의 Flex"


아니다. 궁상맞다. 다 그만두자.


"Flex"


2023-07-01


이미지: 구글


Written by HARU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올해 운세는 어떤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