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는 오래 키운 강아지다.
언제 왔는지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8년은 되었을 듯하다.
이미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고 더 무언갈 입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빼빼 마른 유기견을 봐보기라도 하라며 데려온 지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었다.
정이라곤 한 톨도 주지 않으려고 못생기고 뼈밖에 없는듯한 작디작은 강아지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근데도 사랑이 굶주린 건지, 자신에게 보호가 필요한 걸 알았던 건지 걸음마다 쫓아다니며 반가워하고 애정을 구하는 듯 햝아 대었다.
개 침은 정말 싫다.
나를 햝는 그 축축함에 눈도 안마주치며 온몸으로 거부감을 나타내자 이윽고 햝기를 멈추었다.
그제서야 서서히 바라본다.
작고 마르고 뼈가 보이는 앙상함을.
맑은 구슬 같은 눈으로 끝없이 바라보는 눈동자를.
우리가 키우지 않으면 시골 마당에서 크게 될 거라는 말을 듣고는
결국 키우게 되었다.
그렇게 불쌍하니까 동정으로 키우게 됐는데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반짝 빛나는 하얀 털과 함께 한 많은 시간들은
우릴 가족으로 만들어 주었나 보다.
함께 자고 뒹글고 뛰고 산책하고
이야기했던
우리 가족의 추억 속에 한 장 한 장 스며든 봄이.
요즘
나는 봄이가 귀찮아졌다.
이제 곧 죽음이 다가오는지 소변을 가리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한 지 몇 달이 되었을까.
잠은 언제나 나의 고민거리였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언제나 피곤을 달고 살았는데
최근 봄이가 밤중에 고통으로 보살핌이 필요하게 되자 나 대신 엄마가 봄이와 자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항상 봄이와 함께 잤었다.
그 봄이가 없으니 나는 깊은 잠을 자게 되었다.
밤중에 내는 자박자박 발소리, 물 마시는 소리 때문에 내가 수면을 방해받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귀마개도 샀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면에 영향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제는 엄마가 봄이 데리고 잘래?하고 물어도 거절한다.
나는 푹 자는 게 좋다.
방까지 바꾸었다.
내 방은 이제 엄마와 봄이가 자고 나는 다른 방에서 잔다.
하지만 봄이가 새로운 내 임시 거처가 된 방에 들어와 눕는다.
잘 시간이 되었는데 그냥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옆에 누워 그 코 끝을 바라본다.
가뭄이 든 땅처럼 깊이 갈라져 있는 코끝.
GPT 말에 따르면 많이 아플 거란다.
저런 것쯤은 바셀린 같은 거만 바르면 나아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옛날엔 봄이가 자고 있는 내 머릿가에 자기 엉덩이를 붙여놓고 잠을 잤었다.
얘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그 따뜻하고 작은 무게감이 마음에 얼마나 다정히 들어오던지.
지금이야,
내가 옆에 거릴 두고 누워도 무언가 불편한지 피해 다른 자리로 가 눕는다.
네가 갔으면 좋겠다.
내가 들었던 다른 사람들 이야기처럼
그냥 집에서 어느 순간 눈감고 편히 갔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가면 편할 것 같아
너의 코끝을 보면 내 맘이 타는 것 같다.
하지만 너를 돌보느라 좋아하는 꽃구경도 못가고 잠 못 자는 엄마를 보면
우리 엄마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깝다.
아가
나는 네가 편히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