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경계선은 안전한가요?
그동안 크고 작은 전시 수십 건에 강의나 행사 준비해 본 경력만도 도합 10년이 훌쩍 넘건만 그럼에도 나의 이 무대공포증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떨면서도 나는 계속 시도해왔다.
에니어그램처럼 인간 심리유형이 장형, 가슴형, 두뇌형으로 나뉜다면 나는 조금도 고민할 여지없이 두뇌형 인간이다. 책임진 일의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머릿속으로 무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동선, 표정, 말투, 소음 관리까지도 챙겨보는데 이것으로 불안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연습과 리허설은 기본. 이마저도 하지 않고 걱정만 돌릴 때는 정말 불안이 나를 삼킬 것만 같다. 때론 최후의 심판의 날을 받아둔 것 마냥 무서워하기도 한다. 그런 전전긍긍 새가슴이었던 내가 ‘아, 수행이 좀 되었구나.' 하는 순간이 점점 더 자주 찾아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그중의 한 사건이 있었다. 9년만에 다시 시작한 요가수업이라 많이 기대되고 또 긴장도 됐다. 그간의 공백을 깨우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날이었다. 문화공간이 아닌 진짜 요가원에서 열 수 있어 너무 설렜고 원장님이 회원들에게 적극 추천하셔서 감사한 마음에 정성을 다했다. 예측불가한 상황들에 대비해 여러 변수도 미리 생각해두었다.
정원 8명에 총 7명이 수업 신청을 했다. 7명 모두가 다 만족하면 좋겠지만 어렵다는 것을 안다. 편안하게 해내고 싶으면서도 실수 또한 하고 싶지 않은게 자연스런 사람 마음이지 않은가. 그런 마음이 들때마다 새기곤 하는 지혜 하나는, '열 사람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으며 2명은 나를 받아주고 1명은 내가 뭘 해도 싫어한다'는 열 명의 법칙이다.
그저 그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순수하게 공명하고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받아줄 '한 사람'을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경건해지고 겸손해진다. 앞선 바람들이 오만이었다는 걸 스스로 느껴서다. 작든 크든 이 수업에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오는 것일 테니 준비한 것들을 온전히 잘 전달하고 싶다는 진심을 내 안에서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비판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쑥 내려갔다.
그럼에도 막상 수업 세팅을 할때엔 긴장이 올라왔다. 심지어 수업날은 기축월 무술일. 토 오행이 그득한 날이었다. 사주 명식에 금이 많은 나는 금을 생하는 토기운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내 일간은 축토, 미토도 뚫는 을목 아닌가. '어떤 무거움이 덮치려 하더라도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뿌리내리면 괜찮아!'하고 명상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씩 수련실로 입장했다. 호흡 명상을 시작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부드럽게 호흡하며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경험과 척추의 느낌, 강한 수직의 힘으로 함께 뿌리내리는 느낌이 좋았다. 편안했다.
아사나 수련으로 이어져 수업이 한창일 무렵 한 회원분이 늦게 들어와 탈의실에서부터 우당탕탕. 수련실 입구에서도 종이컵에 물 받는 소리 졸졸졸졸. 발걸음은 쿵쿵. 숨소리 거칠게 끝자리 빈 매트 위에 올랐다. 참으로 소란스러운 합류였다. 이미 다른 선생님들 수업에서 목격하긴 했지만 내 수업에서 그 행동을 마주하니 나 역시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집중을 다시 돌려와 준비한 것들을 해 나가며 유도명상을 잘 마쳤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스트랄 프로젝션 기법을 이용하여 심상화를 유도한 것이기에 금방 휘발된다. 아침 꿈이 금방 잊히는 것처럼.
때문에 서둘러 메모나 스케치하시라고 종이와 재료들을 나눠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분, 바로 옆사람도 아니고 건너편 저 멀리 있는 회원에게 큰소리로 오랜만이라고 외치며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담은 나중에 해주십사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이유가 분명한 수업이었기에 이유도 잘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싸한 분위기를 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뭐를 하라는 건가요?‘라고 톡 쏘아 묻는다던지, 복도에서 나를 피해 가려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뻔하면서 '아이씨'를 외친다던지 하면서 말이다. 50대 초반은 한참 되어 보이는데 참 흔치 않은 캐릭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들 조용한 가운데 점토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소리로 헤드폰을 낀채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눈이 동그래지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건 아니지'하는 생각에 바로 ‘통화는 밖에서 해주세요.’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랬더니 눈을 치켜뜨면서 한참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어릴 때 친구들이랑 싸우면 한 번씩 보게 되거나 나 역시 시전 해본 적 있던 ‘나 지금 정말 화났어!’를 온몸으로 표현하려는 바로 그 째림 말이다. 그 속도에 맞춘 슬로 모션 ‘아이씨!’도 아주 찰지게 시전 하시면서.
’내가 방금 뭘 본거지?‘
흔들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의 수업이고 참여하는 여러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과 비용에 대한 권리이자 존중이다. 당황스러웠지만 웃으며 한번 더 얘기했다.
“모두가 지금 집중해서 작업하고 계시잖아요. 통화는 밖에서 해주세요."
시선을 거두고 내 매트 위에 앉아 가만 물라에 집중하며 흥분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렸다가 다시 일어나 다른 회원들을 돌며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묻고 작업을 보아드렸다. 회원들과 대화하며 경직된 분위기가 조금씩 풀렸고 그러는 사이 그분은 들어올 때 그랬던 것의 두 배로 더 우당탕탕 거리며 퇴장했다. "0000(차번호)! 주차 넣어주세요!!!" 소리치며.
거칠고 무질서한 에너지 덩어리가 공간을 빠져나가자 신속하게 공기의 흐름은 평화로워졌다. 소곤소곤 부드러운 목소리가 오가고 꼼지락꼼지락 손놀림들도 속도가 붙는 게 보였다. 누구보다 편안해진건 바로 나일 것이다. 마침 이 날의 주제는 경계선이었으니, 그 예시가 아주 생생하게 우리 모두 앞에 펼쳐진 것이다.
"오늘 주제에 맞는 상황이 펼쳐진 것 같아 반갑네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회원분들의 진지한 참여와 다정한 눈빛 속에 ‘고생한다’하는 위로도 함께 담겨 있음을 느꼈다. 더욱 감사한 것은 끝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그러나 끝까지 호기심을 유지하며 참여해 주셨다는 거다.
최근 잘 돌보지 못했던 내 마음의 일부를 보시고 눈물을 흘린 분도 계셨다. 슬픔이 아니라 앎의 반가움에서 오는 그런 정화의 눈물임을 우리는 다 같이 알았던 것 같다. 이런 수업이 처음이라 낯설어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온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한 명씩 돌아가며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마무리했다.
"오늘 여러분들이 경험하신 물방울은 나의 경계에 대한 것인데요, 이 경계라는 게 심리에서는 나를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에서 ‘얼마나’를 뜻하는 거예요. 내 마음에 울타리가 없다면 아무나 들어와서 주인행세를 해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상처를 받고 휘둘리다가 언젠가는 아주 폭발하겠죠. 반면 내 울타리가 너무 높거나 완고하다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요. 그래서 건강한 경계선 세우기가 참 중요한데요, 우리가 경계선을 세우기가 참 어렵잖아요. 어릴 때 우리의 부모님들이라고 뭘 알고 키운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내 경계가 쉽게 침범받기도 했고..
그런데 이제는 내가 내 경계가 허물어졌을 때 스스로 세울 줄 아는 성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 경계선을 어떻게 잘 세우느냐? 심리학에서는 강한 자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자아는 제멋대로 하는 에고를 뜻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무얼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떻게 행복하고 내가 나의 앎대로 살아갈 주체성이 있는지 이런 자아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방울이라는 상징으로 오늘 작업을 해봤는데요 오늘 만들어보신 경험으로 한번 나는 어떤가 한번 지켜보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들은 집에 가져가셔서 오늘 밤 자신에 대한 묵상 한번 해보시고 숲이나 바닷가, 들판으로 보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참여자들도 기쁜 모습이었지만 누구보다도 크게 배운 건 나였다. 정신이 번쩍 드는 돌직구 같은 불편함이었지만 해결법은 체화되어 있었고 상황은 흐름 따라 정돈되었다. 애씀 없는 노력 그리고 선을 좋아하고 악은 무관심으로, 다만 가까이 가서 정면으로 보라는 가르침이 떠오른다. 푹 숙성된 잘 익은 치즈 하나가 툭 던져진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맛있게 먹어야지! “
मैत्रीकरुणामुदितोपेक्षाणां सुखदुःखपुण्यापुण्यविषयाणां भावनातश्चित्तप्रसादनम्
maitrīkaruṇāmuditopekṣāṇāṃ sukhaduḥkhapuṇyāpuṇyaviṣayāṇāṃ bhāvanātaścittaprasādanam
행복한 대상에게는 우호감을, 괴로워하는 대상에게는 연민을, 선한 대상에게는 기쁨을, 악한 대상에게는 무관심을 수행함으로써 마음이 고요하고 청정해진다.
‹요가수뜨라 1장 3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