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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Kim Oct 31. 2020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런던에서의 삶은 내 인생이 되었다. 처음 도착했을 땐 20대였는데 런던에서 온전히 나의 30대를 모두 보냈고 이제 난 40대에 막 접어들었다. 처음 여행가방 하나 달랑 들고 왔던 맹랑했던 아가씨는 이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어 인자하게 웃을 줄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은 궁금할 때도 있다. 만약 내가 그때 런던으로 떠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런던에 온 것이 내 삶에 있어 최고의 선택이었는지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가보지 않은 길은 항상 궁금하고 그 길은 어떠했을지 알 수도 없다. 어차피 한번 선택한 우리 삶의 길은 다신 되돌릴 수 없으니 일단 런던행의 선택에 감사하기로 했다. 런던에 와서 이런저런 일도 많았지만 좋았던 아팠던 그런 삶의 에피소드들이 나의 인생이 되었고 내가 되었다. 이곳에서 신랑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런던에서 태어났으니 나에게 참 의미 있는 도시임은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서울은 엄마처럼 날 낳아주고 다독여 키워주었고 런던은 아빠처럼 산전수전 타지 생활 곡예를 하며 씩씩하게 자라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내겐 서울은 엄마고 런던은 아빠다.


처음엔 새로 도착한 런던이란 도시를 더욱 알아가고 이곳에서 시작된 직장생활이 내 일상의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나의 가족 특히 아이를 위한 엄마로서의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엄마가 된 후 알게 된 것은 아이만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 덕분에 또 다른 삶의 원동력도 난 얻게 되었다. 아이에게 좋은 삶의 롤 모델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생각은 조금 안일해졌던 런던의 삶 속에 다시 뜨거운 불씨를 지펴주었다.


20대 30대 나는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걸까 싶을 정도로 매사에 열정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너무 앞을 보고 열심히 달리다만 보니 꼭 번아웃이 온 것처럼 런던 생활의 많은 것들에 흥미를 잃어버린 순간이 있었다. 마음속 두근거림들과 뜨거움들이 조금씩 사그러 들 때쯤 왠지 삶이 메마른 장미가 되어가는 느낌이자 뜨거운 여름이 지나 쓸쓸한 가을로 접어드는 인생의 길에 놓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육아로 인해 신체적으론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정신적으론 위로가 되고 충전이 된 시간들이었다. 한 생명의 태어남을 직접 목격하고 목도 못 가누던 갓난아이가 한 걸음을 떼기 위해 하루에도 몇십 번씩의 엉덩방아를 찧어 대며 한걸음을 만들어 내고 걷고 뛰고 이젠 내게 2개 국어로 말까지 한다. 문득 생명의 위대함과 이 조그만 아이도 작은 한 걸음을 위해 저렇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데 나도 다시 나로서의 걸음을 걸어 나아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다시 나의 삶의 열정을 되찾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말로만 조언을 주는 엄마이기보다 아이가 나의 삶의 방식을 보고 자연스럽게 배우며 영감을 얻어갈 수 있도록 나도 내 삶을 더욱 의미 있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꿈들을 과거형으로 몰아놓기보다는 크고 작은 꿈들과 함께 여전히 가슴 뛰고 재미있는 삶을 아이와 함께 경험하고 기쁨을 공유해보려 한다. 그리고 나의 아이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도전하며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


아직 내일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찍는 점 하나가 선이 되어 다음날 나타나기도 한다. 오래전 내가 런던에 찍은 점하나는 선이 되고 울고 웃던 날들의 밝고 어두운 색들이 조합되어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고 있다. 좋은 작품이 만들어 지기 위해 다양한 색의 조합이 필요하듯 우리의 인생도 좋기도 힘들기도 한 다양한 날들이 뒤섞이는 것인가 보다. 앞으론 어떤 선의 그리고 색의 그림이 나의 삶에 그려지고 칠해질 것인가. 런던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과감하게 내가 원하는 색을 집어 들어 능동적으로 나의 삶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그림엔 한번 그은 선은 지울 순 없다. 하지만 다양한 색으로 덧칠은 가능하다. 어제는 증발한 듯 하지만 오늘 이 순간부터의 나의 행동은 내일의 결과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런던의 오늘 하루가 또 새롭게 느껴진다. 처음 런던에 도착했던 그날처럼.


By LiLaLo from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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