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별 이야기(with 이수영&신혜성)_이지훈(2004)
노란 머리 그녀 옆에 노란 머리 내가 서 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한다고 했는데 색이 빠져서 그런지 그녀와 나는 같은 머리색을 하고 다녀서 더 눈에 띄었다. 그녀와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펜션을 잡아 놀러 가기도 하고, 가끔 집에 가서 라면도 끓여 먹고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몇 살 어린 동생이 게임하는 모습을 뒤에서 함께 지켜보기도 하며, 이게 연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녀는 집에 일찍 들어가는 편이 아니다. 그 말은 즉 나와 함께 할 시간이 많다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보면 내가 다른 약속이나 바쁜 일이 생길 때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그 약속에는 늘 많은 남자들이 끼여있었다. 그녀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술. 술. 술을 믿지 못하다 보니 걱정이 되었고 혹여 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는 그녀를 보면 불안했다. 가끔은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과 그녀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내 안에서 자주 부딪혔다.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 왜 담배냐. 그녀가 가끔 흡연을 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반항심으로 '너도 하면 나도 한다' 이런 생각이었다. 말보로 레드는 쫌 독한 편이다. 매번 담배를 사서 한두 까치 피고 나서 나머지는 친구에게 주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 스트레스를 혼자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녀와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통화中)
"술 많이 취했네? 이제 집에 가 어서~"
"하나도 안 취했는데? 나 데리러 오면 안 돼?"
"나 지금 가면 돌아올 때 지하철이 없어. 그냥 집에 가 바로!"
"더 늦게까지 같이 놀면 되지! 못 오면 나 알아서 놀다 갈 테니까 걱정 말고 자"
"아니 어떻게 내가 자냐! 어서 집에 가라!"
"담배 쫌 그만 펴!"
"자기랑 있을 때는 안 피는데 왜 그래?"
"남들이 자기 담배 피운다고 나한테 계속 얘기하잖아. 쫌 끊어!"
"거의 안 핀다니까. 왜 그래 계속!"
"그럼 나도 필 거야!"
"미쳤어? 담배 들고 오기만 해 봐. 가만 안 둘 거야!"
"아니 넌 되고 왜 난 안 되냐!"
"난 담배 피우는 남자 싫어하니까 절대 안 돼!"
"그럼 넌 왜 피냐고! 피지 말라고!"
"원래부터 폈는데 왜 이제 와서 지랄이야!"
"자기야~ 오늘은 나랑 같이 있자~"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제도 막차 타고 우리 들어갔잖아. 집에 가야지~ 내일 데이트해~"
"난 오늘 집에 안 가고 싶은 거야..."
"나도 같이 있고 싶다고! 근데 안돼! 가자 어서!"
"그럼 난 더 놀다 갈래 과사람들이랑~"
"그런 게 어딨어! 집에 가자니까!"
"집에 가기 싫다고. 알아서 좀 있다가 갈게. 먼저 쫌 가!"
대화만 보면 그녀가 너무 놀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 딱 그랬다.
그래서 결국 365일 1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두고 우린 학교 앞에서 파스타를 먹다가 헤어졌다. 이미 선물을 사 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그게 진심이냐고 되물었다. 두 번이나. 난 진심이라고 얘기를 했고 그녀는 씩씩거리며 가게문을 박차고 나갔다.
사실 좋아하는 마음이 훨씬 컸다. 저런 술 문제를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사이가 좋았으니. 하지만 거의 반년동안 술만 먹으면 내 말을 듣지 않는 그녀에게 화가 너무 많이 났고 나 스스로도 힘들었다.
난 1분 후쯤 계산을 하고 뒤따라 나갔다. 그녀를 잡아볼까도 생각했다. 그때 거스름돈 500원짜리를 떨어뜨렸는데 동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눈물 때문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운 날이다. 대낮에 한 이별이라 길을 걸어 다니는 게 너무 창피하였기에 바로 오락실 노래방으로 몸을 숨기고 30분 정도 울며 노래를 불렀다. 정말 엉엉 울었다.
그대 내게 말로는 못하고
탁자 위에 물로 쓰신
마지막 그 한마디
서러워 이렇게 눈물만
그대여 이젠 안녕
'나는 이렇게 슬퍼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데... 넌 눈물도 흘리지 않고 화만 내며 가는구나...'
헤어지자고 말한 건 나인데, 왜 나만 아픈 걸까. 왜 나만 이렇게 눈물이 멈추질 않는 걸까.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이별 노래만 찾아 부르며 나를 더 슬픔 속으로 구겨 넣었다. 담담하게 불러야 하는 저 노래도 엉엉 대며 불렀다.
이별 이야기(with 이수영&신혜성)_이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