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느리게 걷기 AGAPE_강타(2005)
헤어진 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참 많은 연락을 받았다. 다 학과사람들이다.
"너희 헤어졌다며?!"
"그냥 싸운 거야 머야?"
"괜찮은 거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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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헤어지자고 한 건 맞아.
하지만 거의 1년을 사귀어 놓고서 헤어진 지 1시간도 안돼서 이렇게 소문을 내고 다닌다고?
난 적어도... 너도 나처럼 어딘가에서 슬퍼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
그리고 헤어지자는 얘기를 갑자기 들었으면... 이유가 무엇인지 묻거나, 내가 잘할게 하며 잡던가 머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넌 그냥 진심이냐고 두 번 묻고 나갔잖아. 우리 대화 아직 덜 끝난 거 아니었어?
그렇구나.
너도 이 이별을 기다렸던 거구나.
그렇구나.
역시 더 사랑한 사람은 나였고, 나만 아픈 거구나.
내가 질 수밖에 없는 거겠죠
이별이 늘 그렇듯이
더 사랑한 쪽이 약자죠
내가 없이도 잘 살아가겠죠
잠시 스쳐 지난 추억뿐이겠죠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
다음 날 누군가가 나에게 얘기해 주었어.
어제 네가 너무 힘들어했다고.
학교 건물에 들어온 너를 봤는데 펑펑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었다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건물 뒤쪽 흡연장 구석에서 울고 있는 걸 우연히 누군가 발견을 했고 그래서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고.
너도 그날 나처럼 남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밤늦게까지 사람들과 술을 먹는데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다가 집에 잘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고.
너는 다음날 학교에 오지 않았어.
어떻게 해야 하지? 연락을 해야 할까?
고민을 했지만 나도 사실 100% 확신이 있지 않아서 주춤거렸어.
다시 만나도 똑같은 문제로 싸우는 건 아닐까.
내가... 너의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일까...
그래 그거였어. 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었어.
소주 한 병에 쓰러지는 나와도 술 없이 1년을 그렇게 행복하게 잘 지냈잖아.
그리고 또 지금 생각해 보면 난 너에게 왜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으려고 해? 집에 무슨 일이 있어?라고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그냥 늘 집에 가라고만 다그쳤어. 집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넌 새로운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등교를 했어.
혹시나 네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선배를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역시 딱 예상한 대로 나 다음으로 최근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그 남자. 물론 나와 만남을 가질 때 동시에 만난 건 아니란 거 알아. 이 일로 슬퍼하는 너를 달래며 그분이 고백을 했고 넌 받아 줬겠지. 근데 헤어진 지 5일 째인데 학교에 손을 잡고 오니.
너와의 시간을 기억 속에 묻기로 했어.
나에게 '처음'이라는 것을 많이 알려 주었던 너.
너희 집 골목길 앞에서 추위에 떨며 1시간 이상을 기다렸고, 터벅터벅 집에 들어가는 널 몰래 지켜봤던 날들도.
너와 싸우고 나서 옆에 있던 전봇대에 괜히 화풀이해서 손에 피가 났던 것도.
미안하다며 엉엉 울며 내 손을 잡고 울었던 너도.
몇 년이 지나서 한 모임에서 우리는 만났지.
그때 느낀 건 나만 널 일방적으로 사랑한 게 아니었다는 거야.
아니 사실 난 이기적이었고, 너의 투정을 받아주지 못했고, 나 혼자 아프다고 생각했다는 거야.
사실은 네가 날 더 배려했고 사랑했다는 걸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되었어.
느리게 걷기 AGAPE_강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