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친구의 고백_2AM(2009)
여러 친구들과 함께 pub이나 맛집을 다닐 때도 있지만, 공부를 하러 갈 때면 그녀와 단 둘이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다녔다. 영화관도 자주 가고, 공원 풀밭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음악을 함께 듣곤 했다. 주말에는 기차를 타고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을 가기도 하였고, 해수욕장에서 둘이 수영도 했다. 누가 봐도 연인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남자친구가 일본에 있기에 다들 우리는 이렇게 제일 친한 사이로 끝날 꺼라 생각을 했다.
어학연수가 끝나기 한 달 전. 그녀는 나보다 2주일 먼저 일본으로 돌아가기에 함께 있을 시간은 단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녀도 나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고백을 하고 싶었다. 자주 가던 공원에서 강을 바라보며 평소와 같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다가 이 노래 좋다며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꽤 오래됐어 내 맘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지 혼자서 괴로워한 지
언제부턴가 네가 울 때마다
너를 울리는 남자가 너무나 미웠어
차라리 내가 널 지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는 내가 널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한글 가사, 영어 번역 가사, 일본어 번역 가사를 함께 프린팅 한 종이와 편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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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떨면서 얘기를 했다.
"Oppa... Thank you. 고마워. 아리가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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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I can't"
다른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날 그렇게 헤어진 후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오늘 만나자~' 할 수는 없었다. 이틀 후 늦은 밤 그녀를 찾아갔고, 다행히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홈스테이 식구들과 인사를 하고 난 후 그녀의 방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남자친구에게 일주일 전에 헤어지자고 했어. 늘 고민이었었는데... 일본에 돌아가면 헤어지자고 말하기가 더 힘들 거 같더라고. 그래서 미리 헤어지자고 했어."
"응 그랬구나... 잘 한 선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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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바다 보러 가자"
"응. 가자."
아침 일찍 도착한 골드코스트(Gold Coast). 점심은 HardRock 카페에서 햄버거, 저녁은 Japanese Restaurant에서 카레, 빛이 거의 없는 늦은 밤에는 해변에서 폭죽놀이도 하였다. 1분 1초가 너무나도 소중했고, 우리는 단 1초의 어색함도, 우울함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댔다.
그녀와 함께 연수를 온 친구들이 일본으로 하나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같은 날 연수를 왔지만 돌아가는 날은 4~5일 정도 차이가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제일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이었고, 우리에겐 4일이란 시간이 남았다. 학원도 가지 않고, 다른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녀와만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곧 헤어진다는 생각에 난 우울해 주겠는데, 그녀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같이 더 있고 싶어서 항공권 일주일 뒤로 바꿨어."
다. 행. 이. 다.
남은 11일은 오로지 그녀와만 시간을 보냈다. 내 모든 생각과 세포 하나하나가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존재하는 듯했다. 당장 내일 죽을 사람처럼 사랑했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후 우리는 거의 매주 소식을 주고받았다. 연락이 뜸해질 때쯤인 약 5개월 후 그녀를 만나러 갔다.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겼지만, 그 외에는 딱 친한 친구인 것처럼 행동을 했다. 그녀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녀는 모든 식사, 투어에 함께 어학연수를 하였던 다른 친구들을 초대하였다. 아니 오히려 그 친구들이 나를 더 가이드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그녀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자주 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많은 친구들과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는 것을. 3박 4일 간 20명이 넘는 친구들을 만났다고 하면 말 다 한 거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결국 내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고민한 후 마음을 열어주었던 그녀에게 내가 확실히 하지 않았다.
널 좋아한다. 너랑 있고 싶다.라고 몇십 번을 말했으면서 우리는 사귀는 관계고 사는 곳이 다르지만 계속 이 관계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녀도 조금 기다리다가 마음을 접고 우리의 시간을 '한 여름밤의 꿈'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남자는 다 똑같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몸이 멀어지자 바로 마음이 멀어졌다고.
우리는 뜨겁게 사랑했다. 사귀자는 말 없이. 그렇다 보니 우리의 사랑은 시작도 끝도 모호했다.
그래서 늘 마음에 걸렸다. 몇 달 후 한국에서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 괜히 그녀에게는 직접 말해줘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친구와 짧은 여행을 갔을 때 그녀를 잠시 만나 그 사실을 알렸다. 그녀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친구의 고백_2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