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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Nov 06. 2019

전환점

 프롤로그

2014년 4월 24일 저녁.

집으로 가는 길, 낯선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ooo방송국의 A 기자입니다. 내일 1박 2일로 제주도를 가야 하는데, 새벽 6시까지  출근 가능한가요?"


오전에 본 방송국 면접 결과를 알리는 연락이었다.

갑작스러운 출장과 새벽 출근 소식에 당황했지이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파견 계약직 신분인 촬영보조를 뽑는 면접.

떨어지면 정말 초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다행히 붙었다. 다만 합격의 기쁨 보다 일을 하게됐다는 안도감과 씁쓸함이 뒤따랐다.


내가 일하게 될 분야는 촬영기자의 보조로 일명 '오디오맨'이라 불리는 직종이었다.


방송 카메라로 진로를 정했을 때 방송국에서 일하는 지인들은 "오디오맨은 배울 게 없으니 절대 하지 마"라고 말했었다.


보조로 시작해 메인으로 갈 수 있는 제작카메라와는 달리 보도 분야는 공채가 아닌 이상 '보조' 업무만 하다가 끝나는 직종이었다. 론고시에 자신이 없던 나는 제작카메라로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신입은 밤샘 근무 필수, 휴일은 없으며 월급은 80만 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OO프로덕션 대표, 2주 넘게 회사에서 숙식하며 편집만 하는 의 모습 .외주업체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나는 한 달도 못 가 첫 직장을 그만채용공고를 뒤적였다. 그러다  발견한 OOO방송국 '오디오맨'공고.

생각 없이 훑어보던 중 정보란에 쓰인 문구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1년 근무 후, 평가를 통해 스튜디오 또는 중계 카메라 감독으로 보직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2014년 4월 25일 목요일.


"1년만 버텨보자. 기회는 오겠지."

그렇게 다사다난한 오디오맨 생활 시작됐다.


오디오맨으로 일하며 상에는 다양한 사건사고가 수시로 발생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호기심과 놀라움을 제공해 주던 '속보'라는 단어가, 이 일을 시작한 뒤로는 긴장의 상징으로  만큼 사회 이슈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취재현장은 마치 폭풍전야와 같았다.

고요함이 지나면 비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곳.


사건 또는 취재 대상이 등장하기 전에는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모습을 드러내면 현장은 한바탕 휘몰아치곤 했다. 지루함과 스펙터클이 공존하는 기이한 세계였다.  

기록의 현장.

여름에는 더운 곳이, 겨울에는 추운곳이 곧 취재현장이었다. 태풍이 오면 비바람을 맞으러 가야 했고, 화재 현장에서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뛰어다녔다. 새벽에 출근하고도 늦은 밤까지 퇴근 못하는 일을 겪으며 정신이 몽롱해지기도 했다.


'뉴스는 아무나, 아무렇게나 만드는게 아니구나' 라고 느꼈다.


하지만 남들은 가지 못하는 곳에 한 발 앞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경험선했다. 열악한 처우와 고된 환경 속에서도 나는 거움을 느꼈다.


"뉴스는 너랑 나, 취재기자가 같이 만드는 거다. 특히 나를 옆에서 받쳐주는 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


업무 파트너였던 촬영기자 Y선배는 나에게 멘토나 다름없었다. 내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해주,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었다. 특히 촬영기자의 분신과 같은 ENG카메라를 건네며 영상을 찍어보라고 했을 때, 그리고 그 화면이 뉴스에 보도됐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좋은 인연을 맺는다건 큰 축복이다. Y선배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 큰 행운이었다.

  

단지 쳐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던 오디오맨 경험은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과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나아가 새로운 도전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던 때, 우연히 트라이포드를 들고 뛰어다니는 오디오맨을 봤다.


금씩 옅어져 가는 그때  시절이 떠르며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4~5년 전 일을 기억에 의존하며 쓰는 거라 사실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방송국 일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것 외에도 잡다한 이야기들을 기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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