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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Nov 07. 2019

형님이라 불리는 사람들

"선배님이라 부르지 말고 선배라고 불러."


호칭에 '님'자를 안 붙는 기자들의 세계는 신선했다.

갓 입사한 신입기자도 상사를 부를 때 선배, 부장, 국장이라 불렀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이라는 것을 비춰봤을 때 신기한 문화다. 나 또한 '기자님', '선배님'이라 불렀다가 지적받기도 했다. 이는 오디오맨에게도 적용되는 칼 같은 규칙이었다.


이유 간단했다.

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을 취재할 때 주눅 들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전통이라는 것. 그러나 호칭에 '님'만 안 붙었을 뿐, 평기자들과 관리자급들은 철저한 수직관계다.


하지만 유일하게 '님' 자를 붙이는 게 허용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형님'이라 불리는 람들로 보도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들이었다.


오디오맨부터 촬영기자, 취재기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형님이라 호칭했다. 


형님들은  보도 차량을 운전하지만 신분은 오디오맨과 같았다. 오디오맨이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방송국으로 파견 온 것처럼 형님들은 렌터카 회사와 계약을 맺고 들어다.  


이들 업무는 기자를 취재현장까지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것. 운전이 어려울 게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면 오산이다. 교통이 혼잡한 수도권에서 발휘되는 형님의 실력이, 시간에 쫓기는 긴박한 순간을 모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오디오맨이 출근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취일정과 배차 표다.


나는 유독 배차 표에 민감했다.

취재일정이 힘든 것은 개의치 않지만 배정받은 형님이 별로면 그날 하루는 스트레스가 다.


어떤 형님을 배정받냐에 따라 취재를 나가는 촬영기자와 오디오맨의 하루 컨디션이 좌우된다. 


내가 좋은 형님과 나쁜 형님으로 분류할 때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 전화를 잘 .

형님과 연락을 주고받는 건 오디오맨 담당이다. 당시 내 휴대폰에는 '형님 이름+차 넘버'로 저장된 번호가 수두룩했다. 형님들은 회사 근처에 대기하다가 오디오맨의 연락을 받고 움직인다. 둘의 커뮤니케이션 취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급히 이동해야 할 때, 형님과 연락이 안돼 피 말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광화문 청사에서 MNG로 중요한 브리핑을 연결해야 했다. 갑작스레 결정된 일이라 빨리 자리 잡 준비해야 하는데, 형님과 연락이 안 됐다.


몇 번을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되, 결국 데스크가 배정받은 차량을 빌려 출발했다.


 형님은 오디오맨 사이에서도 전화 연결이 어려운 사람으로  유명했다. 차 안에서 무협소설 읽는 걸 즐겼던 형님의 휴대폰 항상 진동으로 설정돼 있었다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둘째, 내비게이션을 잘 보는고 다니는 가.

가끔 배정받은 형님들 중 길을 못 찾고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관공서 등을 제외하고는 취재 현장이 일반 주택가나 먼 지방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길 찾기가 어려운 건 이해한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이라는 유용한 도구가 발명된 게 아닌가.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지시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지 말을 안 듣고 가다 길을 빙빙 도는 상황이 생한다.

여유 있게 출발했음에도 급하게 현장으로 뛰어가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선배는 카메라를 들고, 나는 트라이포드와 장비 가방을 들고 숨이 차게 뛰는 상황.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시키 좋형님은 딱 한 분 있었다.

곱슬 장발머리에 갈색빛 도는 안경을 끼고 검은 계열의 옷을 주로 입으셨던 형님인데, 운전 센스는 기본이고 인성마저 뛰어난 분이셨다. 지금도 이름과 모습, 목소리가 떠오를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긴 형님이었다.


그 형님이 배정된 날은 나와 촬영기자 선배마음 편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하루였다.


얼마 전, 취재차 회사 근처에 왔다는 Y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주차장으로 배웅 갔다가 보도차량에 계신 형님을 만났다. 오디오맨 때, 일정을 몇 번 같이 나갔던 분이었다.


"형님, 예전에 오디오맨 하던 친군데 기억나세요?"


선배의 질문에 형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긴 수년간 많은 오디오맨들이 스쳐 지나갔을 텐데 기억하는 게 무리였을 거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잠깐 뵙게 된 형님의 모습을 보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일도 있었지만 반대로 일을 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형님들의 운전 덕분이었다.


나의 성장을 이끈 경험의 바탕에는 액셀레이터를 밟는 형님들의 발과 운전대를 잡은 손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다.


*MNG(Mobile News Gathering)

-방송용 카메라 등으로 취재한 영상물을 엘티이(LTE)와 같은 무선 통신망으로 전송하는 방식.

-주로 중계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서 사용되며 재난 재해와 긴급 보도 등 사건 현장에서 간이 시스템만으로도 고화질 생방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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