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내는 사람으로
실력만으로 증명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조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생존의 문법을 요구했다.
나에게 "일바보"라 말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가끔은 농담처럼,
가끔은 조롱처럼,
그리고 뒤에서,
가끔은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던 말이었다.
나는 공대를 졸업했다.
말을 다채롭게 풀어내는 재주가 부족했고,
정치머리도 없었고,
그저 주어진 문제를 풀고,
실적을 만들고,
증명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나는,
전형적인 ‘일바보’였다.
회사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기획은 잘 몰라도
비딩에서 질 수 없었고,
실적은 매일 점검했다.
긴장이 풀리는 날은 없었고,
이슈라도 생기면 해결될때까지 몰입했다,
나는 그렇게 ‘일’은 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내 일보다
내 태도와 목소리의 높낮이, 표정과 분위기를 더 본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는 말했다.
“일만 잘해서는 안 돼. 정무적으로도 굴려야지.”
“그렇게까지 몰입해봤자, 위에서는 몰라.”
“열정 있는 거 좋은데, 피곤해 보여.”
그 말들은 나를 찔렀다.
내가 틀렸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내 방식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을지 모른다는 예고장처럼 들렸다.
“일은 잘하는데 까칠하다.”
내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가장 거북하고 억울했던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여러번 들으먼서 ,그 말은 나에 대한 공식적인 인상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점점 나는 그 말에 갇혀버렸다.
그 말은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씌워지는 관계의 조건부 딱지같은 거다.
‘성과는 인정하지만, 정서적으로 불편한 존재’라는 식의 평가.
그 말은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유연한 척 했지만
사실 그 말은 언제나 내 자존감을 찌르고, 존재의 이유를 흔드는 말이었다.
내마음에 굳은살은 언제쯤 생길까..?
얼마 전, 삼성전자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조직을 떠난다는 기사를 봤다.
그들은 “일에만 몰두했지만, 그만큼의 인정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과보다 정치가 더 중요해지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말이 참 아팠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내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일바보’다.
실패하면 아쉽고, 성공하면 기쁘고,
업무에 몰입하면 나를 잊는다.
그리고 안다.
이런 내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도.
그건 타고난 기질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 쌓아온 나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게 됐다.
‘일’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회사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성과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아도 된다.
포기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게 전부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일바보’였던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나는 순수했고, 성실했고, 진심이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는,
그 시절의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한 사회적 지능을 선물하고 싶다.
조직을 버텨내기 위한 ‘생존기술’이 아니라,
나를 덜 소모하면서도 더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방식으로.
‘일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하되, 나를 지켜내는 사람으로.
#일바보 #성과중심 #몰입형인간 #조직과정치
#워킹맘 #회사생활 #브런치에세이 #일잘하는사람의고민
#사회적지능 #조직생존기술